노동운동 탄압용 일본 형법 '업무방해죄' 본떠…파업권 제약 근거로 이용
서구국가는 쟁위행위 자체로는 형사처벌 안해…ILO "결사의 자유 침해" 수차례 개선 권고

건설노조에 대한 무리한 수사에 항의하며 분신한 노동조합 간부가 끝내 숨진 가운데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형법으로 제한하는 우리나라 법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 위원장은 지난 3일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업무방해죄로 노조 간부를 처벌하는 나라는 일본하고 한국뿐"이라며 "과거 수많은 노조 지도자를 구속했던 업무방해죄가 전가의 보도처럼 살아났다"라고 언급했다.

이는 지난 1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해 이튿날 숨진 민주노총 강원건설지부의 양회동 지대장에 대한 수사를 비판한 것으로, 양 지대장은 공동공갈 및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둔 상태였다.

양 지대장은 분신 전 동료들에게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네요"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업무방해죄로 노동조합을 처벌하는 나라가 한국과 일본뿐이라는 말은 사실일까?
[팩트체크] 업무방해죄로 노조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형법(314조)에 규정된 업무방해죄는 허위 사실 유포나 위계, 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할 때 성립하는 범죄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1995년 논문 '노동쟁의행위와 업무방해죄의 관계'(장영민) 등 학계 논문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형법의 업무방해죄 조항은 일본 형법에서 물려받았고, 일본 형법의 업무방해죄는 프랑스 형법에 그 원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 형법은 1864년 개정 때 '임금인상이나 인하를 강요할 목적 또는 산업이나 노동의 자유로운 수행을 방해할 목적으로 폭력, 협박 또는 위계로써 노동의 조직적 정지의 결과를 발생·유지·존속하게 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을 두었다가 1884년에 쟁의행위가 폭력의 행사를 수반하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그러나 이를 모방한 일본 형법은 현재까지 '위력으로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234조)을 두고 있다.

일본 형법은 '방해'라는 개념을 통해 쟁의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까지도 금지 대상에 포함하고 '폭행·협박' 대신 '위력·위계'라는 추상적 표현을 사용해 폭력에 미치지 않는 행위도 처벌할 여지를 두었다.

[팩트체크] 업무방해죄로 노조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07년 보고서 '노동사건에 대한 형벌적용 실태조사'(김기덕)에 따르면 일본 형법의 업무방해죄는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폭넓게 금지해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용도였다.

이는 일본 형법을 본뜬 우리 형법으로 이어져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제한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실제로 2002년~2006년 국내 쟁의행위 사건에 적용된 죄목 중 가장 높은 비율(30.2%)을 차지하는 것이 업무방해죄였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을 인정해왔다.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의 2017년 논문 '30년간 업무방해범죄의 변화'(정소영)에 따르면, 노동쟁의 행위가 잦아지면서 이를 업무방해죄로 기소하는 일이 많아지던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헌법재판소는 사용자(회사)의 재산권을 노동3권보다 우위로 판단했다.

대법원도 폭력 행위가 없는 단순파업을 사용자의 업무를 방해하는 위력 행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업무방해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는 2010년을 기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당시 헌재는 업무방해죄를 합헌으로 판단하면서도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한 업무방해는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명시했다.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도 같은 취지의 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검찰은 파업이 불가능한 직권중재 기간에 파업을 시도한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간부 15명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했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사업장의 정상 운영을 위한 필수유지 인력을 남겨두고 이루어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동조합법) 상 준법투쟁이었다.

[팩트체크] 업무방해죄로 노조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대법원은 철도노조의 파업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쟁의행위로서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를 구성한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또한 파업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경우에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 이후 단순파업에 업무방해죄가 적용되는 사례는 감소했다.

파업은 대개 사측과의 교섭 과정을 비롯한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인정 여부는 여전히 해당 재판부의 자의적 해석에 따른다.

법무법인 이평의 양지웅 변호사는 "단순파업에 업무방해죄가 인정되는 경우는 드물다"면서도 "파업은 헌법상 노동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폭넓게 인정되어야 하지만 그 범위에 대한 판단은 판례마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팩트체크] 업무방해죄로 노조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지난해 헌재는 단순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을 또 다시 '합헌'으로 판단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해고에 반발해 휴일 근무를 거부했다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자, 2012년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에 대해 헌재는 4(합헌) 대 5(위헌)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단순파업의 업무방해죄 처벌 관련 쟁점'을 다루며 지난해 헌재 결정을 언급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위헌 의견이 다수이지만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합헌이 된 점은 입법자가 사회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신호"라며 "개선 입법 전 사정기관이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기소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팩트체크] 업무방해죄로 노조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애초 한국의 법 구조가 노동자의 파업권을 좁게 보장해 쟁의행위가 과도하게 제한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현행 노조법상 쟁의행위는 그 주체와 절차, 목적 등이 '정당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기존의 판례는 이를 매우 좁게 해석해왔다.

이에 쟁의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되고 나면 손해배상청구와 같은 민·형사 책임을 피하기 어려우므로 파업권의 보장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는 "다른 나라에서는 정리해고 반대나 노동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을 인정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해 노동자에게 과도한 민·형사 책임을 부과해왔다"고 설명했다.

[팩트체크] 업무방해죄로 노조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인권위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외국에서는 쟁의행위에 대한 형사책임 문제는 이미 100여년 전에 사회적 논의가 끝나 현재는 쟁의행위 자체를 형사처벌하는 사례가 없다.

폭력 행위 등이 발생하면 이에 대해서만 형법이 적용될 뿐이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는 "단순파업을 형사처벌하는 외국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돼 있다.

업무방해죄가 살아 있는 일본에서도 노동조합의 단결 자체는 '위력'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본래 파업 행위 자체가 위력 행사를 통한 손해를 수단으로 삼기 때문에 절차나 평화의무 등을 위반할지라도 폭력 행위 등이 없는 이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한 한국 검찰의 기소 관행과 업무방해죄에 대한 사법부의 확대해석이 "결사의 자유 침해"라며 여러 차례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ILO는 2017년 보고서에서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완화되어 노동자가 유죄 판결을 받지 않더라도 기소와 재판을 거치는 점, 체포와 구속이 가능하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결사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구성한다"라고 지적했다.

[팩트체크] 업무방해죄로 노조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