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아시아의 여성 기업가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중국 유학 시절 일본 불법복제 컨텐츠의 범람을 목격한 사람(유코 야마사키 재팬미디어 대표·일본), 고향 카사바 농부들의 어려움이 안타까웠거나(와큐 부디 우타미 루마모카프 대표·인도네시아), 4명의 아이를 키우며 세탁서비스의 필요성을 절감하고(호카만 수모모엔터프라이즈 대표·말레이시아), 청소년 상담을 하면서 VR 정서인지 솔루션의 필요성을 느꼈던 사람(황성원 모티브이알 대표·한국)도 있습니다.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 개최 '2023 여성 한중일 스타트업 프로그램'에서 만난 아시아 주요 국가 여성 스타트업 대표들의 창업기를 한경 긱스(Geeks)가 소개합니다.

음지유통 일본 만화를 웹3로…재팬미디어의 목표

유코 야마사키 재팬미디어 대표
유코 야마사키 재팬미디어 대표
유코 야마사키 재팬미디어 대표는 중국 칭화대 유학 시절 중국에서 일본 만화들이 불법으로 번역돼 유통되는 걸 목격했다. "전세계 무단 복제 컨텐츠의 절반이 일본 컨텐츠고, 이중 상당수가 만화 컨텐츠입니다. 일본 불법 콘텐츠 유통 규모가 190억달러 수준이에요. 불법으로 번역돼 돌아다니고 있는 컨텐츠도 있고, 공식적으로 번역되지 않은채 일본 국내 시장에 머무르고 있는 컨텐츠도 많습니다. 공식적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한국의 컨텐츠 시장과는 대조적이죠."

왜 일본 만화 컨텐츠들이 해외로 정식으로 나가지 못하고 음지에서 불법 유통되고 있을까. 퍼블리셔 사이에선 직접 번역해 유통까지 시키기엔 투자 대비 이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컸다. 비용이 문제라면 참여형 플랫폼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야마사키 대표는 "열정적인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컨텐츠를 즐기면서 컨텐츠를 번역하고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을 떠올렸다"며 "한마디로 최초의 웹3 만화 플랫폼"이라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뛰어난 번역가들은 불법 콘텐츠들을 만드는 사람들 중에 많았다. 일본 만화 컨텐츠 번역 전문가들이 중국 불법 유통 등 음지에 몸담고 있는 셈이었다. "이분들을 잘 활용해보자고 생각했다. 양지에서 번역과 홍보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재팬미디어는 번역가 345명을 확보했다. 플랫폼 정식 런칭도 전에 사전 등록자 수는 만명을 넘겼다.

수익성은 컨텐츠 지식재산권(IP)를 재판매하면서 확보하기로 했다. "기존엔 콘텐츠가 유일한 수익원이었지만 웹3 환경에선 콘텐츠 뿐만 아니라 NFT와 일러스트레이션 등을 재판매하면서 또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 강력한 팬 커뮤니티를 확보하면,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행사부터 성우 관련 행사 등 많은 수익화 가능 기획들이 있다. 내재화된 커뮤니티가 재팬미디어의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Q. 수익을 내기 위한 비즈니스모델은.
A. 주된 수익원은 컨텐츠 매출을 기반으로 한다. 컨텐츠 매출 외에 메타버스 매출도 있다. 일본 기업 등 광고주가 메타버스에 광고를 집행한다. NFT 매매수수료도 있고, 성우들이 하는 팬덤 대상 행사에서 부대수익이 발생한다.

Q. 어떻게 플랫폼 유저들을 모을 수 있나.
A. 만명 유저를 확보하기까지 광고를 한적이 없다. 특히 중국은 열정적인 팬들은 일본의 유명하지 않은 컨텐츠를 찾는다. 잘 알려지지 않는 컨텐츠에 집착해 굉장히 잘 찾아내고 번역도 알아서 하고 유통까지 한다. 새롭고 신선한 일본 컨텐츠를 알리면 유저들은 자동으로 따라온다.

카사바 농부들 수익 늘린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와큐 부디 우타미 루마모카프 대표
와큐 부디 우타미 루마모카프 대표
인도네시아의 카사바 식품 스타트업인 루마모카프의 와큐 부디 우타미 대표는 고향의 카사바 농부들이 가난 속에 사는 모습을 보면서 창업을 결심했다. 카사바가 워낙 낮은 가격에 팔리다보니 농가의 수익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과거 인도네시아 전통음식엔 카사바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층에서 카사바의 인기가 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고향을 떠나 도시를 향했고, 아예 다른 나라로 일하러 가기도 했습니다. 점차 로컬푸드의 중요성을 잊어갔고, 화학비료를 많이 쓴 질 낮은 카사바가 유통됐죠."

카사바의 인기를 되돌릴 수는 없을까? 우타미 대표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는다는 데 집중했다. 원래 인도네시아는 쌀이 주식이지만 빠른 도시화로 라이프스타일이 서구화되며 빵과 라면 등 밀가루 식품 소비가 급증했다. 밀은 인도네시아에서 100% 수입 품목. 우타미 대표는 밀가루 수요 일부를 카사바 가루로 대체해보기로 했다. 그는 "밀가루와 카사바 가루의 영양학적 정보가 비슷하다. 카사바 가루를 통해 농가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네바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카사바 농부들과 협업해 재배 농장을 만들었고, 농약 사용을 하지 않는 유기농법을 개발해 카사바 가루 상품을 출시했다"고 말했다.

카사바 판매처를 구축하고 마케팅과 품질관리에 신경썼다. 루마모카프의 카사바 가루가 인기를 끌면서 협력농부들의 수입은 카사바 1킬로그램당 200~500루피아에서 1500루피아로 늘었다. 카사바 가루 상품화를 통해 농가의 수익성을 높인 것이다. 농법 개발을 지원하면서 카사바 생산성도 높아졌다. 헥타르당 생산량이 10톤에서 13톤으로 증가했다.

우타미 대표는 카사바 가루 시장을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글루텐프리 식품에 대한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세계적 글루텐프리 밀가루 시장이 63억달러라고 보는데, 글루텐이 없는 카사바 가루가 이 시장에서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누구나 쉽게 글루텐 제로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카사바 요리법을 개발하고 있어요. 당장은 인도네시아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게 목표입니다."

Q. 다른 카사바 가루 경쟁업체들과 비교 우위는.
A: 우리는 카사바 가루를 누구보다 먼저 도입한 기업 중 하나다. 다른 경쟁업체들이 있긴 하지만 브랜드 가치를 보게 됐을 땐 인도네시아에선 우리의 인지도가 높고 브랜드 입지가 탄탄하다.

Q. 카사바 가루는 밀가루보다 비쌀텐데 어떻게 제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나.
A. 고급식품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천연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카사바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소득이 높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코로나 이후 건강식품 수요 증가했고 카사바 가루에 대한 전세계적인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일관성있는 컨텐츠 제작, 챗GPT보다 낫죠"

장위첸 AI웨이브즈 대표
장위첸 AI웨이브즈 대표
중국 스타트업인 장위첸 대표가 창업한 AI웨이브즈는 컨텐츠 제작 전문 AI 플랫폼이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캐릭터 이름과 성격을 AI와 협업해 만들 수 있습니다. 스토리도 에피소드별로 편집할 수 있고, 이 스토리를 기반으로 AI가 스토리에 맞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동영상까지 만들 수 있어요. 롱폼과 숏폼, 또 소설, 드라마, 틱톡 등 다양한 형식의 컨텐츠들을 AI와 협업해 생산해내는 거죠."

대표적인 생성 AI인 챗GPT와 다른 건 뭘까. 장 대표는 일관성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AI웨이브즈 플랫폼의 차별성이라고 했다. 장 대표는 "챗GPT는 일관성 있게 캐릭터 성격을 맞춰서 챕터별로 길게 만들 수 없다. 빈먄 우린 이미지와 비디오도 만들고, 특정 플롯에 맞춰서 고품질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편의 경우 에피소드들 간 일관성을 챙기는 데 신경썼다. 예컨대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사망했다고 했을 때 그 캐릭터 설정을 계속 가져가면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빌리빌리, 틱톡, 다양한 플랫폼에 어울리는 컨텐츠를 맞춤형으로 제작할 수 있고 기존 IP를 활용할 수도 있다.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AI 컨텐츠 제작툴"이라고 말했다.

Q. AI가 표절이나 편양성, 인종차별 등을 학습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A. AI 컨텐츠 관련 보상모델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유해한 컨텐츠는 만들어내지 않도록 훈련을 시켰다. 커뮤니티 통해 시험하고 모니터링하고 있다.

Q. 시장에 있는 다른 솔루션들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은?
A. 컨텐츠 제작 전문 AI 쪽엔 경쟁업체가 많지 않다. 물론 지원 툴은 있지만 단순히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만화를 만드는 정도다. 우린 스토리보드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지원툴이다. 예컨대 챗GPT가 스토리 만드는데 도움 줄 수는 있지만 완결성이나 일관성은 없다. 우린 일관성을 갖춘 텍스트를 만들고 이미지나 영상화까지 함께 할 수 있다.


아시아 각국에서 창업한 다양한 여성 스타트업 대표들

한국의 황성원 모티브이알 대표는 2012년에 대구 교육청에서 진행한 청소년 대상 힐링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했다. 청소년들이 학교폭력이나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적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정신적 지지를 제공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청소년들로부터 굉장히 도움이 됐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게 창업과 솔루션 개발까지 이어졌다. 모티브이알은 VR를 통한 정서인지, 검사 솔루션으로 시각화와 상호작용을 활용한 청소년 대상 인터뷰와 평가를 진행한다.

말레이시아의 수모모 엔터프라이즈 호카만 대표는 아이를 여러명 키우면서 각종 옷 세탁에 어려움을 느꼈다. 아이가 많은만큼 생기는 세탁물은 많은데 세탁소를 가려면 차를 가지고 나가서 주차하고 맡기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파트 바로 앞에 세탁소가 없는 게 말레이시아에선 일반적이었다. 런드리홈이라는 세탁 브랜드를 런칭하게 된 배경이다. 호카만 대표는 말레이시아를 넘어 해외에도 비슷한 세탁소 모델을 도입할 예정이다.

일본 오보히비토 컴퍼니의 모에 카네코 대표는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를 케어했던 경험으로 창업했다. 카네코 대표는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어릴 때부터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정부나 민간기관이 제공하는 보조금이나 간병 서비스가 있었지만 혼자 힘으론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카네코 대표는 돌봄 제공자와 서비스를 대상자와 연결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요양기관의 정보를 제공하고 컨설팅, 케어프로그램 체험까지 제공하고 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