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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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서점에 들어선다. 사장을 대면한 그는 다짜고짜 서점에서 일을 시켜달라 하더니 “저는 그러기를 갈망하고 있으며 그 무엇도 제가 마음먹은 바를 실행에 옮기는 걸 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초년생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겸손과 예의는 어디로 간 것인가? 사장이 뭐라 대꾸할 틈도 없이 그는 곧이어 길고 긴 연설을 이어간다.

그의 요지는 이렇다. 이 매혹적인 일을 자신이 아직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고, 인간에 대해서는 정통하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임이 분명하다, 그런 자신을 고용하기 전에 평판이 궁금할 수 있겠지만 남들의 말은 어떤 사실도 알려주지 못하며 심지어 어떤 평판마저도 자신은 보란듯이 속여넘길 수 있다고, 그러니 지금 당장의 인상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자신은 어디서든 오래 머물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틀림없이 몇 년이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지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의 솔직함과 패기에 탄복한 사장은 그 자리에서 그를 고용한다. 그리고 일주일 뒤, 지몬은 다시 사장을 대면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일이 “온통 웬숫덩어리”가 되어버렸다고, 주어진 권한은 너무 작고 환경은 형편없는데 갖춰야 할 미덕은 너무 많다고, 그러니 자신의 영혼과 자유를 보전하기 위해 그만두겠다고. 지몬은 또다시 인내심의 부족을 증명하는 사례를 추가하게 된 것이다. 이런 그에게 뒤따르는 걱정을 그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는 그는, 자신의 진솔한 마음이 이해받는 벅찬 순간을 고대하며 또다른 귀인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렇게 온갖 공간을 전전하기 시작하는 지몬을 보며 어떤 독자들은 바틀비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말하는 바틀비의 이 단정하면서도 온순한, 깨끗하게 단호한 태도가 지몬과 맞닿지만, 자제력을 발휘하는 수도승 같은 바틀비와는 달리 명랑하게 무책임한 지몬의 부정성은 그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타너가의 남매들> 속 내가 가장 사랑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바, 나는 가능한 한 즐겁게 받아들이겠어. 내가 삶에서 진보를 이루려는 것도 아니잖아, 난 조금 가지런하게 살고자 할 뿐이야.” 독일어로는 ‘다른 방식’을 의미할 “eine Art und Weise”가 “가지런하게”로 바뀌는 과정에 잔잔하게 소름이 따른다. 포괄적인 암시가 소설의 문맥에 맞게 보다 특정되며 구체화된 것인데, ‘가지런하다’라는 말의 어감과 의미가 아름답고 적확해 허물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지몬을 무책임한 망나니만으로 요약하기에는 가지런한 그의 태도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지몬처럼 살 수는 없겠지. 일이 밀릴지언정 일하지 않고 살기에는 삿된 염려와 욕망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렇지만 나의 하루에 지몬의 태도를 조금씩 포개본다면, 나의 영혼과 자유의 조각을 하나씩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사진: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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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이하 지만지)은 내겐 미지의 공간이자 무한한 감사의 대상인데, 이제껏 번역되지 않은 책의 출간이 언제나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이런 책이 있었어?’ 싶은 책들을 지만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출간하고 있다. 그리고 지만지의 수많은 소중한 국내 최초 번역본들 중 내 품안에 가장 귀하게 남은 책이 바로 로베르트 발저의 <타너가의 남매들>이다.

글쓰기에 대한 거대하고 처연한 은유로 다가온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읽자마자 독일문학을 내 문학의 반편으로 삼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만나게 된 진지하고 광기로 가득찬, 웃기는 데에 늘 성공하지는 않는 귀여운 독일문학의 작가들. 현재에 분노하고 이상을 희구하는 그들의 태도 앞에선 ‘현실을 잘 모르는구나’ 라는 소리가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간절한 고민을 꺼내놓고 순수하다는 말을 듣는 일을 반복하다 어느새 표정이 닳아간 사람이라면 이들의 고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더 말해보는 의지를 잘 알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발저의 인물들이 낯선 길 위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이 없다.

지금 나는 로베르트 발저의 두번째 장편소설이자 아직 한국에는 번역되지 않은 <조수(Der Gehülfe)>를 기다리고 있다. 손과 눈이 가지런한 번역가와 편집자가 매 문장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우연의 결정들을. 그럼 나는 또 기꺼이 바지런한 마케터가 되어 아직 그 책을 모르는 세상을 일깨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