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도 수조 안에 빠져 전신화상 치료받다 8일 만에 하늘나라로
현장엔 기초적인 안전시설조차 없어…경찰, 과실 여부 등 조사
[르포] 근로자의날도 일하다 숨진 우즈베키스탄 청년의 코리안드림
10일 오전 경남 양산시 한 낡은 공장.
이 공장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20대 A씨가 '근로자의날'인 1일 작업을 하다 온수조에 빠져 9일 숨진 곳이다.

기자가 찾은 현장엔 샌드위치 패널로 덮인 천장 지붕 아래로 낡은 작업 장비와 도구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바닥은 지난 주말 내린 빗물이 덜 빠진 듯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다.

지붕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볕은 이 눅눅하고 열악한 환경을 밝히지 못했다.

딱히 문이랄 것도 없는 공장 입구 오른편으로는 작은 사무실이 하나 있었다.

그 옆으로는 피막 처리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이 'L' 자 모양으로 이어져 있고 뒤편에는 A씨가 빠져 숨진 낡은 온수조가 있었다.

[르포] 근로자의날도 일하다 숨진 우즈베키스탄 청년의 코리안드림
A씨는 이곳에서 온도 조절을 위해 겨우 15㎝ 너비의 온수조 테두리를 밟고 수도꼭지 쪽으로 가려다 변을 당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파이프를 건조하는 온수조는 증발한 물을 다시 채우기 위한 수도꼭지가 벽과 거의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수도꼭지를 작동하기 위해선 온수조와 벽 간 약 40㎝ 너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허리둘레가 29인치인 기자가 그곳으로 가보려 하니 뜨거운 온수조를 피하기 위해 몸을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돌리지 않고서는 몸통이 제대로 들어가기조차 어려웠다.

건장한 체격인 A씨가 온수조 테두리 위를 건너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현장엔 사건 발생 9일이 지난 지금도 펜스 같은 기초적인 안전시설이 돼 있지 않았다.

[르포] 근로자의날도 일하다 숨진 우즈베키스탄 청년의 코리안드림
현장에서 만난 업체 대표와 직원들은 모두 불편한 듯 말을 아꼈다.

업체 대표는 A씨의 생활과 사건 경위 등을 묻는 취재진의 말에 "물어보지 말라. 사람 좀 살자"며 답변을 피했다.

A씨는 지난 1월 경남 양산시 한 공장에 일을 하러 왔다.

직원은 12명에 불과하지만 그중 6명이 그와 같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 노동자라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공장 직원들은 A씨의 이름을 따 '타루'라고 불렀다.

큰 문제 없이 공장 생활을 착실히 이어가던 그였다.

근로자의 날인 지난 1일도 평소처럼 이곳에 출근했다.

근로자라면 누구나 사업장 규모나 업종과 관계없이 모두 적용받는 유급 휴일이지만 A씨에게 휴일이나 수당은 그의 고국만큼이나 먼 이야기였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선 악착같이 일해야 했다.

이날도 여느 때처럼 부지런히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쇠 파이프를 건조하기 위해 온도조절 장치를 조작하다 발을 헛디디며 온도 67도인 온수조에 빠졌다.

주위에서 지게차 작업을 하던 다른 직원이 이를 목격하고 A씨를 온수조 밖으로 빼냈지만 이미 전신 화상을 입은 뒤였다.

그리고 지난 9일 A씨는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열악한 근로 조건을 개선하고 근로자의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제정된 근로자의 날에 그는 열악한 근로 조건 속에서 세상과 이별했다.

경찰과 고용노동청은 이곳 대표와 직원 등을 상대로 안전 조치 등이 미흡했는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후 업체 대표의 과실이 확인될 경우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