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닛 직원이 지난해 열린 ‘싱가포르 영상의학학회(SGCR WIRES)’에서 참석자에게 흉부 엑스레이 영상분석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CXR’를 설명하고 있다.   루닛 제공
루닛 직원이 지난해 열린 ‘싱가포르 영상의학학회(SGCR WIRES)’에서 참석자에게 흉부 엑스레이 영상분석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CXR’를 설명하고 있다. 루닛 제공
국내 의료 인공지능(AI) 기업들이 해외에서 연이어 호평받고 있다. AI 기술에선 한국이 미국 등에 뒤처졌지만, 의료AI 분야에선 존재감이 다르다는 평가다. 하지만 건강보험 수가를 제대로 받지 못해 국내에선 제 역할을 못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서 인정받는 기술력

해외 호평받는 韓 의료 AI, 국내선 푸대접
국내 의료AI 기업들이 미국 일본 등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루닛은 오는 6월 초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암학회인 ‘2023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 2023)’에서 연구초록 16편을 발표한다. ASCO 2023에 참가하는 전 세계 의료AI 기업 중 가장 많다. ASCO가 루닛의 연구 성과를 그만큼 인정했다는 의미다.

코어라인소프트는 지난 2월 미국 UCLA에 심혈관 진단 솔루션 ‘에이뷰 CAC’를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이 솔루션은 연간 약 9만 명의 환자가 찾는 대형병원인 하버UCLA 의료진이 심장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을 판독하는 데 활용될 예정이다.

국내 1세대 의료AI 기업 뷰노도 지난해 하반기 태국 대만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등에서 흉부 엑스레이 판독 솔루션 ‘뷰노메드 체스트 엑스레이’의 허가를 받았다. 지난달에는 미국에서 AI 기반 의료영상 분석 기술에 대한 특허를 받기도 했다.

“韓, 양질의 의료 데이터가 경쟁력”

의료AI의 기술력을 인정받는 배경에는 한국의 의료 환경이 있다. 의료비가 저렴한 덕에 다양한 의료 정보가 축적돼 있다. 전산화된 의료 데이터는 기업이나 대학에서 연구 목적으로 활용된다.

루닛 관계자는 “환자 한 명의 엑스레이, CT, 자기공명영상(MRI)이 모두 있는 경우가 많고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데이터의 품질이 매우 좋다”며 “영상분석 AI를 고도화하기에 유리한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의료AI 시장 확대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빠른 성장도 기대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마케츠앤드마케츠에 따르면 2020년 45억달러 규모였던 세계 의료AI 시장은 올해 156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2025년까지 연평균 50.2%의 고성장을 지속해 약 362억달러 규모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국내 AI 업체 역시 해외 판로 확대를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루닛은 지난해 매출(139억원)의 80%인 110억원을 해외에서 벌었다.

국내선 건강보험이 걸림돌

반면 국내 의료 현장에 도입되는 속도는 더디다. 건강보험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8년 골연령 측정 지원 소프트웨어(SW)인 ‘뷰노메드 본 에이지’를 시작으로 150여 개의 AI 의료기기 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제품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선별급여 혹은 비급여 판정을 받지 못해 일선 병원에서 쓰이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 시장 문턱에 막혀 국내 출시가 되지 않은 게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의료AI 업계 관계자는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 기술력을 평가받는 지표 중 하나가 한국 시장에서의 성과”라며 “국내 시장 진출이 어렵다보니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업계는 4월 정부가 혁신의료기기에 대해 비급여로 우선 사용될 수 있도록 한다고 발표한 데 기대를 걸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 진입 문턱이 낮아지면 의료AI 기업들의 해외 진출에 속도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