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의 여제' 8년 만에 '올 쇼팽'으로 돌아오다
전 세계 피아노 귀재들이 몰리는 쇼팽 피아노 콩쿠르 결선. 숨 막히는 긴장의 순간, 깜빡이던 조명이 꺼져버렸다. 갑작스레 덮친 어둠. 관중은 술렁였다. 하지만 이 순간 가장 긴장했을 연주자는 침착하게 연주를 이어갔다. 그리고 우승컵을 안았다. 제16회 쇼팽 콩쿠르(2010년) 우승자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38·사진) 얘기다. 이날 이후 그는 ‘암전의 피아니스트’로 불리게 됐다.

이후 13년이 흘렀지만, 그는 어두울 때나 밝을 때나 음악에 몰입했다. 겉모습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묵묵하게 그리고 진중하게 자신의 연주 세계를 넓혀온 그는 “음악 앞에서는 국경도, 성별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아브제예바는 어느 무대에서나 검은 정장에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한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 다른 여성 피아니스트와는 다른 모습으로 관객을 만난다.

오는 12일 ‘올 쇼팽’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찾는 아브제예바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올 쇼팽 프로그램 리사이틀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성장의 시간이 필요했다”며 “내가 요즘 느끼는 쇼팽에 대해 한국 관객들과 공유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쇼팽은 영감의 원천”

“모든 시대의 음악은 연결돼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 음악을 통해 쇼팽의 음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죠. 물론 그 반대도 있고요.”

아브제예바는 따뜻한 음색과 탁월한 해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자신의 ‘영감의 원천’으로 쇼팽을 꼽은 그는 마치 스펀지처럼 다양한 레퍼토리와 연주자로부터 얻은 영감을 자신의 연주에 녹여낸다. 그는 “최근 연주한 다케미츠 도루(1930~1996)의 작품도 내게 큰 영감을 줬다”고 했다. 다케미츠는 20세기 일본 대표 작곡가로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 클래식 음악과 동양 악기를 결합하는 시도를 한 음악가다.

쇼팽은 생전에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의 개성을 잘 드러냈다. ‘쇼팽 스페셜리스트’ 타이틀을 단 연주자가 유독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브제예바는 여러 쇼팽 스페셜리스트를 보면서 음악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고 했다.

“쇼팽의 곡은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됩니다. 제게는 모두 탐험 대상이죠. 연주자마다 다른 방식으로 연주합니다. 이런 각자의 개성이 쇼팽 음악에 경이로움을 더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브제예바는 이번 독주회를 통해 한층 다채롭고 깊어진 쇼팽을 들려줄 예정이다. 스케르초 3번 같은 쇼팽의 초기 작품부터 폴로네이즈 판타지, 소나타 3번 등 후기 작품까지 소화하며 쇼팽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조성진·김봄소리 좋아해요

러시아 국적의 아브제예바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 출신 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프의 작품을 앙코르로 연주하며 전쟁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실베스프로프는 전쟁 이후 안전상 이유로 독일로 거처를 옮긴 85세 작곡가다.

“음악은 사람을 연결하고 가깝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예술가들의 활동은 분명 평화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아브제예바는 한국 음악가들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에 대해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연주자”라고 답했다.

따뜻하면서도 진중한 피아니스트 아브제예바가 들려주는 새로운 쇼팽은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만날 수 있다. 그가 국내에서 독주회를 여는 건 2015년 이후 8년 만이다. 작년 1월엔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의 협연자로 국내 관객과 만났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