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소통 지향…고유종 재활 후 방사·외래종 중성화로 줄여
"동물원은 신기하고 재밌기보다 '메시지' 주는 곳 돼야"
[기로의 동물원] ③ 청주동물원엔 코끼리가 없다…"사람 마음도 불편하지 않아"
청주동물원은 평일에도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소풍 온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부모와 나들이를 나온 어린이들….
지난달 28일 찾은 청주동물원은 아이들로 시끌벅적했다.

어릴 땐 동물원이 그저 즐거운 공간이었다면 성인이 된 뒤에는 즐겁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한 공간이 됐다.

야생동물을 가둬놓은 인위적 공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인 김정호 수의사와 동물원을 둘러봤다.

김 수의사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동물원이 성인이 돼도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동물원에서 일하는 동물원 폐지론자'로 알려진 그는 관람객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동물원이 되려면 동물원이 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물원이 동물과 야생을 다시 연결하는 구조센터이자 재활훈련장, 연구시설, 학교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자연과 소통하는 동물원…외래종 줄이고 고유종 늘리고

청주동물원의 오소리 '군밤이'.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가 구조해 작년 8월 청주동물원에 이사 온 군밤이는 야생동물 주제에 사람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쫓아다닌다.

오소리는 '작은 곰'으로도 불린다.

최근 대구 팔공산 등산로에 나타나 곰으로 오인당하며 등산객을 놀라게 한 것이 오소리다.

2017년 경기 남양주시에서는 야생 오소리가 잇따라 사람을 공격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군밤이는 핏덩이 때부터 두 달간 사람 손에 큰 탓에 사람을 친숙하게 생각한다.

관람객이 우리 앞에 서자 누워있던 군밤이가 헐레벌떡 철조망을 타고 올라와 눈을 맞추더니 철조망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군밤이는 관람객이 오면 이런 행동을 보인 뒤 반응이 없으면 다시 풀밭 그늘로 돌아가 몸을 뉘었다.

사람과 '친해진' 군밤이는 그 탓에 야생으로 돌아갈 길이 요원해졌다.

그런 군밤이를 보호해주는 곳이 청주동물원이다.

김 수의사는 "군밤이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 손에 너무 익숙해져서 (야생으로) 못 돌아가고 있다"라며 "야생동물구조센터는 공간이 제한적이라서 동물원으로 오게 됐다"라고 말했다.

청주동물원은 2014년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됐다.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서 청주동물원이 보호 중인 동물은 지난 3월 기준 늑대 6마리, 반달가슴곰 7마리, 여우 4마리, 삵 7마리, 스라소니 6마리, 독수리 7마리, 두루미 8마리, 혹고니 5마리 등이다.

청주동물원은 최근 '천연기념물 동물 보존관 지원사업'에도 선정돼 천연기념물 방사 훈련장도 마련할 계획이다.

청주동물원에서 보호받다가 야생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한 개체도 당연히 있다.

2017년 충북야생동물구조센터가 구조한 독수리 한 마리는 청주동물원에서 치료받다가 2018년 1월 야생으로 방사됐다.

이 독수리는 겨울 철새답게 매년 2월까지 충청지역에서 지내다가 3월 초 번식지인 몽골로 떠났다가 돌아오길 반복하고 있다.

김 수의사는 동물원에서 보호받다 야생으로 돌아가는 동물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살아 있는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에 가둬진 독수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면서 "인간은 위치추적장치로 독수리가 송신하는 좌표로 (국내에서 구조된) 독수리가 이제는 몽골 하늘을 날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지 않으냐"라고 말했다.

[기로의 동물원] ③ 청주동물원엔 코끼리가 없다…"사람 마음도 불편하지 않아"
◇ '없는 것' 많은 동물원…동물에 '억지 외출' 안 시켜
청주동물원은 '없는 것'이 많은 동물원이다.

'운'이 나쁘면 동물을 만날 수 없는 것이 대표적이다.

동물원을 찾았을 때 수달사에서 수달을 볼 수 없었다.

사실 한낮에 동물원에 가서 수달을 보길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수달은 야행성이기 때문이다.

청주동물원은 관람객을 위해 수달을 억지로 야외방사장에 내보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대신 아쉬워하는 관람객을 위해 사육장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동물원 측은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면서 관람 기회와 교육 효과를 확보하는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해 추진하고 있다.

청주동물원은 '코끼리 없는 동물원'이기도 하다.

청주동물원 동물은 2018년 4월 91종 519마리에서 지난달 71종 389마리로 5년 사이 20종 130마리가 줄었다.

동물원에서 사라진 동물은 포유류의 경우 자칼·하이에나·코요테·과나코·알파카·당나귀·꽃사슴·다마사슴·기니피그·망토원숭이·여우원숭이·표범·물범, 조류는 흑고니·거위·물닭·칠면조·에뮤, 파충류 설가타거북 등이다.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는 외래종부터 줄여나간다는 것이 청주동물원 방침이다.

그러다 보니 고유종 비율이 공영동물원 가운데 가장 높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등이 2020년 펴낸 '공영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청주동물원 고유종 비율은 27.1%로 공영동물원 10곳 중 최고였다.

김 수의사는 "외래동물은 중성화해 자연히 감소하도록 관리하고 있다"라며 "고유종은 기후 면에서도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다 보니 냉난방 등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기로의 동물원] ③ 청주동물원엔 코끼리가 없다…"사람 마음도 불편하지 않아"
동물 수가 줄면서 동물 한 마리당 공간이 넓어졌다.

대표적으로 과거 히말라야타알·과나코·당나귀·무플론 등 4종이 살던 공간에 현재는 늑대만 생활하고 있다.

김 수의사는 "동물원 동물은 10~20종이면 충분하다"라면서 동물원이 특정 종에 집중하는 '특성화 동물원'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종을 줄이면 야생만큼은 아니지만 동물에게 넓은 공간을 줄 수 있다"라면서 "종을 줄일 현실적인 방법 하나가 '호랑이 동물원'이나 '삵 동물원'과 같은 특성화"라고 말했다.

청주동물원의 다른 특징은 동물원 안팎 동물의 교류를 막지 않는 점이다.

수달사엔 수달의 식사 시간마다 미꾸라지를 같이 먹으려는 왜가리가 찾아온다.

왜가리는 수달사 대신 물새장 근처에서 두루미 곁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김 수의사는 자연 생태계에서는 '경쟁 관계'인 수달과 왜가리가 동물원에서는 공존한다고 설명했다.

◇ "동물원은 자신보다 약한 존재 처음 마주하는 곳"
[기로의 동물원] ③ 청주동물원엔 코끼리가 없다…"사람 마음도 불편하지 않아"
김 수의사는 동물원에 '보이는 공간'보다 예비공간이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물원 동물은 어찌 보면 동물원에 잠깐 있다가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존재로 여겨져야 한다"라면서 "동물원에 방사훈련장이나 동물 해부·생리·행동학 등을 연구하는 시설이 더 많아지고 관련 활동도 활발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청주동물원은 연구 기능 확대를 추진 중이다.

작년 청주동물원 동물병원은 국내 동물원 동물병원 가운데 최초로 컴퓨터단층촬영(CT) 기기를 도입했다.

최근에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장비를 들여왔다.

동물병원 신축까지 준비 중이다.

보유 동물 생식세포를 채취해 냉동 보관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동물원에서 추진 중인 이른바 '프로즌 주(frozen zoo)'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냉동 세포는 인공수정이나 종 복원에 활용될 전망이다.

청주동물원은 다른 동물원보다 많은 시민 참여·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청주동물원은 시민과 함께 해양쓰레기를 주워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마스크 끈을 끊지 않으면 새 부리에 묶일 수 있다고 알리는 캠페인도 벌였다.

투명한 구조물엔 새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는 교육도 진행했다.

김 수의사는 "(동물을 만지는 등의) 관람객 체험 프로그램은 줄이고 행동풍부화에 참여할 기회는 늘려야 한다"라면서 "'신기하다'나 '재밌다'라는 기분만 느끼고 말 것이 아니라 야생동물을 보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라고 발했다.

그는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에게 동물원은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처음으로 만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라며 "동물원이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그 사람의 전반적인 태도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로의 동물원] ③ 청주동물원엔 코끼리가 없다…"사람 마음도 불편하지 않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