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주식시장의 봉이 된 연기금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發) 무더기 하한가 사태로 불거진 주가조작 의혹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주가조작 실체는 수사로 밝혀지겠지만, 이 사태를 초래한 몇몇 구조적 문제는 벌써부터 명확하다. 현행 금융당국의 주가조작 감시 시스템은 장기간 야금야금 진행되는 통정매매엔 무용지물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적은 돈으로 주가조작 효과를 극대화한 차액결제거래(CFD)는 누가, 얼마나 샀는지도 모른 채 방치돼 왔다.

연기금 운용 시스템의 큰 허점도 드러났다. 연기금은 대성홀딩스, 서울가스, 삼천리에 최근 1년간 총 1300억원을 투자했다가 이번 사태로 대규모 손실을 봤다. 최대 20배 폭등해 주가수익비율(PER)이 100배를 넘을 정도로 잔뜩 거품이 낀 종목임에도 연기금은 어찌 된 일인지 대량 매수를 했다.

SG발 폭락 사태에 연기금 큰 손실

엄밀하게 이들 종목을 산 주체는 ‘일임자문’ 형태로 연기금 돈을 위탁 운용하는 펀드(운용사)였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들은 “연기금이 운용사에 지나치게 경직적이고 획일적인 위탁 운용 규정을 따르도록 강요하다가 문제가 터졌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연금이 최초로 만들었고 나머지 많은 연기금이 준용하는 현행 위탁 운용 규정에 따라 국내 운용사들은 연기금 위탁 펀드와 해당 펀드의 벤치마크(BM) 간 수익률 괴리율을 최대 1%포인트 미만으로 관리하도록 사실상 강제된다. 그 이상 괴리가 발생하면 돈을 준 연기금에 이유를 보고해야 하고, 나중에 감사원 감사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어서다.

아울러 운용사들은 일일 매수 제한도 지켜야 한다. 하루에 특정 종목 발행 주식의 0.2% 이상을, 그날 거래대금의 20% 이상을 못 산다. 연기금이 시세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해서다.

작년 6월부터 이번 사태 직전까지 연기금 자금이 대성홀딩스 등 도시가스주에 거의 매일, 하루 몇억원씩 찔끔찔끔 장기 유입된 것은 이런 규정 때문이다. 시세조종으로 도시가스주가 폭등해 코스피 중형주지수 내 비중이 커지자 중소형 지수를 벤치마크 삼은 위탁 운용사는 도시가스주를 기계적으로, 장기간 살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밸류에이션 거품 등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위탁 운용 규정 재정비해야

사실 이런 연기금 위탁 운용의 문제는 운용업계에서 족히 10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급등주가 출현하거나 대형주가 신규 상장돼 특정 벤치마크 주가지수가 영향을 받으면 관련 위탁 운용사는 어쩔 수 없이 주식을 따라 사야 했고, 연기금 매수세가 끝난 직후엔 해당 종목 주가가 폭락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2018년 셀트리온 이전 상장 직후, 2020년 신풍제약 폭등기, 작년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직후 등이 대표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요즘은 연기금 자금이 들어오기 시작한 중소형주를 따라 산 뒤 연기금 매수세 중단 직전에 팔아 차익을 챙기는 매매 기법이 매니저들 사이에서 보편화됐다”며 “연기금은 속된 말로 증시에서 호구가 됐다”고 했다.

연기금은 이제라도 위탁 운용 규정을 전면 보완해야 한다. 시장 상황과 밸류에이션 등도 고려해 주식을 사도록 운용사에 좀 더 재량권을 줘야 한다. 앞으로 나올 제2, 제3의 주가조작에서도 연기금이 희생양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