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마켓PRO 텔레그램을 구독하시면 프리미엄 투자 콘텐츠를 보다 편리하게 볼 수 있습니다. 텔레그렘에서 ‘마켓PRO’를 검색하면 가입할 수 있습니다.

마켓 트렌드

“탄탄소 고려한 소극적 증설로 당분간은 수익성 유지 전망”
“수요 감소 따른 할인 시작돼…보수적 밸류에이션 적용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불과 1년 전만 해도 횡재세 도입이 거론될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정유사의 주가가 미끄러져 내린 뒤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대란이 진정된 뒤 정유사의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축소된 데다, 장기적으로 에너지 전환으로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선 정유사의 적정주가를 산출할 때 사용하는 밸류에이션 배수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직까진 정유주의 투자 매력이 아직 남았다는 의견에 더 많은 힘이 실린다. 단기적으론 올해 정제마진이 작년만 못해도 수익성을 확보할 수준이 유지될 전망이고, 조금 더 길게 봐도 탈(脫)탄소 트렌드를 고려한 글로벌 정유업계가 정제설비 증설에 소극적이어서다.

국내 주식시장에 순수 정유주는 에쓰오일(S-Oil) 뿐이지만, 세 차례나 기업공개(IPO)를 연기한 HD현대오일뱅크가 여전히 주식시장 입성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또 2차전지 사업이 주가에 큰 영향을 주는 SK이노베이션도 수익성 측면에선 아직까지 석유 관련 사업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중국 리오프닝 시작인데 정제설비는 풀가동 직전

지난 3일 에쓰오일은 7만2600원에 거래를 마치며 종가 기준 52주 최저가를 다시 썼다. 올해 들어 12.95%, 작년 6월10일의 고점 12만1500원 대비 40.24% 각각 하락했다. 이날의 하락세는 개장 전 마감한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5% 넘게 급락한 영향이었다. 작년에 고점을 찍은 이후 에쓰오일 주가는 국제유가와 비슷한 방향성을 띠며 저점을 낮춰왔다.

국제유가가 정유사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선 정유사가 미리 사둔 원유의 가치가 움직이며 재고평가손익을 일으킨다. 실제 에쓰오일과 SK이노베이션은 작년 4분기 WTI 국제유가 약세가 지속되며 배럴당 70달러선을 위협하기도 했던 데 따른 재고평가손실로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는 재고평가손실 규모가 대폭 줄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다만 재고평가손익은 현금의 유출입 없이 장부상으로만 계산된다.

실제 정유사의 현금흐름을 좌우하는 건 정제마진이다. 정제마진은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가격에서 유가와 부대비용을 뺀 값이다. 정유업계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정제마진은 배럴당 4~5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최근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축소됐다는 점이다.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지난달 20일 배럴당 2.35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6월 넷째주 평균인 배럴당 29.5달러의 10분의1토막 이하 수준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물가를 잡기 위해 밀어붙인 통화긴축 정책 부작용으로 현지 중소규모 은행이 잇따라 파산하는 등 경기침체 우려가 높아지면서 석유제품 수요도 위축된 탓이다. 미국 수요를 메꿔줄 것으로 기대됐던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재개) 수요는 생각보다 빠르게 늘어나지 않았다.
[마켓PRO] 52주 최저가 갈아치운 S-Oil…저가 매수 타이밍인가
김도현 SK증권 연구원은 “올해 들어 에너지가격 안정화 구간 진입, 글로벌 에너지 수급 우려 해소 단계에 접어들어 전반적인 정제마진 조정은 예상됐던 상황이지만, 예상보다 더 빠르게 하향 안정화가 진행 중”이라며 “이에 더해 (미국 지역은행 파산 사태로 인한) 글로벌 시스템 리스크가 부각돼 수요 감소에 대한 우려는 더욱 확산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올해 평균 정제마진 전망치로 최근의 저점 대비 5배 이상인 배럴당 13.3달러를 제시했다. 기대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중국의 리오프닝으로 수요가 증가하는 데 반해, 공급 증가 여력은 부족하다는 분석에서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 글로벌 정제설비 가동률은 이미 작년 평균이 86.7%에 달한다. 에너지원 수급 불안으로 인해 정제마진이 크게 확대되자 가동률이 치솟아, 향후 더 높일 여유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수요를 늘릴 중국 리오프닝은 이제 시작 단계다. 지금까지는 과잉투자됐던 중국 내 정제설비가 늘어나는 자국 수요를 감당해왔다는 게 김도현 연구원의 분석이다. 그는 “지난 3월 중국의 석유제품 순수출량은 156만톤(t)으로, 전월 대비 52.9% 감소했다”며 “(중국 정부가 부여한) 올해 1차 석유제품 수출 쿼터는 1899만톤으로, 작년 1차분 대비 46% 증가했지만, 오히려 수출량은 12월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중장기적으로 정제설비가 늘어날 부담도 적다. 에너지 전환이 강하게 추진되는 상황에서 정유기업들은 화석연료를 생산하기보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키우는 게 시급하기 때문이다. SK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정유·화학 기업의 자본투자(Capex) 계획의 규모는 1821달러로, 직전 호황기였던 2011~2014년 평균의 57.2%에 불과하다.
[마켓PRO] 52주 최저가 갈아치운 S-Oil…저가 매수 타이밍인가
대신 글로벌정유사들은 탄소포집장치(CCUS), 플라스틱 생산을 늘리는 정제 공법인 COTC(Crude Oil to Chemicals) 개발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에쓰오일이 2026년까지 약 9조3000억원을 투자해 석유에서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해내는 공법이 적용된 스팀 크래커를 세울 계획이다. 이전까지 기초유분은 석유화학업체들이 정유사들로부터 구매한 원유 정제 부산물인 납사를 분해해 생산했다.

“10년 전부터 주가에 반영돼온 석유 수요 감소, 계속될 것”

하지만 정유사가 기초유분 생산 사업을 새로운 먹거리로 삼은 데 대해 박한 평가도 있다. 정경희 키움증권 연구원은 “현재 기초유화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4~0.5배로, 정유업 밸류에이션 대비 낮은 수준”이라며 “(기초유분 생산에 나서는 데 대한) 프리미엄을 추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에쓰오일을 분석하는 17개 증권사 애널리스트 중 유일하게 투자의견을 ‘매수’가 아닌 ‘마켓퍼폼(시장 수익률)’으로, 목표주가도 가장 낮은 7만2000원으로 각각 제시했다. 현재 주가보다 낮은 목표주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매도 의견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장기적으로 석유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탈탄소 트렌드가 꾸준히 주가에 반영돼왔다는 분석이 눈길을 끈다. 아시아 지역 정유사들의 평균 PBR이 2011년 2.4배에서 작년 1.1배까지 꾸준히 하락한 걸 두고 정 연구원은 “(석유제품 수요 감소에 따른 정유사들의) 영구 성장률에 대한 시장의 할인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켓PRO] 52주 최저가 갈아치운 S-Oil…저가 매수 타이밍인가
이 같은 할인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증권가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해온 과거 평균 밸류에이션을 적용하는 적정주가 산정 방식으론 적정주가를 과대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석유제품 수요 정점을 2030년 전후로 제시한 데다, 땅 속에서 캐내는 석유의 대체재인 바이오연료 사용 확대가 석유 수요 감소를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정부 정책이 바이오 연료 사용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직전 고유가 시절인 2010년 전후에도 바이오 연료가 부상했지만, 국제유가 하락으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관심에서 멀어진 바 있다.

최근 EU 집행위원회·이사회와 유럽의회는 2025년부터 항공유에 지속가능항공유(SAF)를 2% 이상 섞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의 최종 타협안에 합의했다. 의무 비율은 2050년 70%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또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는 바이오 경유·휘발유에 대해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정 연구원은 “경유와 항공유는 (석유를 정제했을 때) 생산 비중이 약 36%에 불과하지만, 정제마진이 가장 높은 제품군”이라며 실적 측면에서는 생산 비중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경우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