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은 개인 유전체를 분석해 탈모, 혈당 등의 정보뿐 아니라 각종 유전질환 및 암 발병 여부를 예측하는 유망 기술이다. 하지만 NGS 장비는 미국 일루미나 등 소수의 해외 기업이 독과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차세대 바이오 분야의 해외 의존도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장비 의존도 높은 유전체 분석

NGS는 질환 진단뿐 아니라 신약 개발에도 폭넓게 활용되는 기반 기술로 꼽힌다. 개인의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맞춤형 치료법을 제공해주는 차세대 기술이기 때문이다. NGS는 암뿐만 아니라 임신부의 혈액에 존재하는 태아의 DNA를 분석해 다운증후군 등 염색체 이상을 알아내는 데도 쓰인다. 관련 시장이 커지면서 국내 기업들도 NGS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5년 설립된 한국유전체기업협의회 회원사만 26곳에 달한다.

30억 쌍에 이르는 인간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하려면 전용 장비가 필수적이다. 국내 기업들의 NGS 장비 해외 의존율은 100%다. 영국 경쟁시장청(CMA)에 따르면 NGS 장비 시장의 선두주자인 미국 일루미나의 글로벌 점유율은 무려 80%에 달한다. 나머지는 써모피셔(미국), BGI(베이징게놈연구소·중국), 팩바이오(미국) 등이 나눠 갖고 있다.
유전체분석 장비, 100% 수입…해외업체만 배불린다

NGS 장비 ‘100%’ 수입

문제는 유전체 분석 경쟁력이 장비 의존적이라는 점이다. 최신 장비일수록 염기서열 데이터 분석 속도가 빠르고 정확해서다. 이 때문에 최신 장비가 나올 때마다 장비 가격은 두 배 넘게 뛴다. 48시간 안에 6테라바이트(TB) 용량을 처리하는 일루미나의 ‘노바식6000’ 가격은 10억~11억원대였는데, 노바식6000보다 처리량을 2.5배 높여 지난해 10월 출시된 ‘노바식X’ 가격은 19억원대로 껑충 뛰었다. 국내 진단업체 대표는 “장비를 100% 수입하다보니 국내 기업이 가격 협상력을 갖기는커녕 먼저 도입하려고 줄을 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NGS 장비 가격은 급등하고 있으나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진단기업은 물론 병원 등에서도 사용하면서다.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에 따르면 삼성서울병원 암센터와 강남세브란스병원 등 의료기관뿐 아니라 국립암센터 및 질병관리청 같은 국공립 기관에서도 NGS 장비를 갖춰놓고 있다. 시장 전망도 밝다. 글로벌 시장조사회사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장비, 시약, 분석서비스 등 NGS 관련 세계 시장 규모는 2022년 130억달러에서 2027년 270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장기적 관점 R&D 필요”

NGS 장비 독과점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루미나가 1세대 유전체 해독기를 개발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견고하던 NGS 장비 시장 독점을 깬 기업은 중국의 BGI였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일루미나 기기 100여 대를 사들여 분석하고 자체 개발한 끝에 약 5~6년 전부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바이오업계에서는 NGS 분석 기술을 열심히 개발할수록 일루미나와 BGI 등 해외 장비 기업들의 배만 불리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황태순 유전체기업협의회장은 “지금의 시장 생태계가 공정거래에 위반되지는 않는지 국가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대기업이나 정부의 펀딩 등을 통해 NGS 분석 소프트웨어 및 장비를 자체 개발하는 연구개발(R&D)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