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서 살인 관련 영화·통계·도구 검색 기록 수두룩
"실험 쥐였다" 주장, "반사회적?" 반문…징역 6년→8년 가중
'살인 씨앗' 심은 30대…묻지마 폭행 2주 만에 살해 시도
"달리기하는 남자가 팔로 사람들을 때려요.

"
처음엔 '폭행'이었다.

2008년 1월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2021년 5월 귀국한 A(37)씨는 그해 9월 13일 저녁 강원 속초시 영랑호 산책로에서 팔을 휘둘러 사람들을 때렸다.

그로부터 약 2주가 지난 26일 밤 또다시 산책로를 찾은 A씨 손에는 흉기가 들려 있었다.

일면식 없는 커플이 교차해서 지나가자마자 A씨는 흉기로 커플의 목 부위를 찌르고 손목 부위를 그었다.

피해자 커플은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 없이 각각 약 8주와 2주간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입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등을 토대로 이튿날 오전 7시 45분께 A씨 집에서 그를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암수살인, 추격자, 그것이 알고 싶다-살인자의 기록법, 미제사건, 사형수, 사형, 강력범죄 신상 공개'
조사 결과 그의 휴대전화 속 인터넷 검색 기록에서는 살인과 관련된 각종 내용을 찾아본 흔적이 쏟아져나왔다.

검찰은 A씨가 미국에서 믿고 의지하던 사람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고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들에게 화풀이하고 싶었고, 살인을 검색하면서 속칭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기로 마음먹었다고 보고 살인미수죄로 기소했다.

'살인 씨앗' 심은 30대…묻지마 폭행 2주 만에 살해 시도
여기에 귀국 당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2주간 장기 격리대상자로 지정돼 머무르던 임시생활시설에서 입소를 거부하고 경찰관을 때린 혐의(공무집행방해)가 추가했다.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외여행 기간이 만료됐음에도 귀국하지 않고, 귀국 후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을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 등도 더해졌다.

A씨의 '기행'은 재판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1심 재판 당시 법정에서 진술 거부는 물론 변호인과 가족들의 면회까지 거부했다.

공판 당일에 이르러 불면증, 심신미약, 어지러움 등을 이유로 재판부에 사유서를 내고 불출석하기도 했다.

수사절차와 공판절차 초반에는 "30년 동안 실험 쥐로 살았고, 그 사실을 알게 되어 화가 나서 살인미수 범행을 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늘어놨다.

검찰이 징역 20년을 구형할 때도 "할 말이 없다"며 스스로 진술 기회를 걷어찼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속초지원은 "공공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는 사회적으로 큰 불안감을 일으키므로 엄중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편집성 성격장애가 범행에 영향을 줬다고 보이는 점과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을 들어 징역 6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렸다.

'살인 씨앗' 심은 30대…묻지마 폭행 2주 만에 살해 시도
그렇게 실형을 받았지만, 항소심에 이르러서도 태도의 변화는 없었다.

결심공판 당시 그의 변호인은 A씨가 잘못을 반성하는 사정 등을 열거하며 선처를 구했으나 A씨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되레 1심 재판부가 자신의 '실험 쥐' 관련 진술을 판결문에 인용하면서 '반사회적인 모습을 드러냈다'고 판단한 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A씨는 "그런 사실이 반사회적인 건지, 그런 얘기를 한 제가 반사회적인 건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그는 임상실험이 당사자 동의 없이 몰래 이뤄지는지 궁금하다거나 국가가 모든 전자통신장비를 완벽히 감시·감청·통제하는 게 적법한지 궁금하다거나 자신이 머물렀던 시설에 고문 시스템이 완비돼있는데 근거 규정이 있는지 등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늘어놨다.

사건을 다시 살핀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김형진 부장판사)는 결국 원심을 깨고 징역 8년으로 형량을 높였다.

재판부는 범행동기가 매우 불량한 점과 폭행을 저지른 뒤 2주도 되지 않아 살인을 시도한 점, 범행 도구가 미끄러지지 않게 테이프까지 감아 범행을 계획한 점 등을 가중 요소로 삼았다.

재판부는 "양형 조건이 되는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원심의 형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