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길' 어도·계단 등 자취 확인…10월까지 복원 끝내고 공개 예정
일제 훼손 역사도 생생히 담겨…"임금 볼 수 있는 소통 공간" 역할도
광화문 아래 드러난 100년 전 역사…왕과 백성이 만나던 '월대'
'광화문 앞에 월대(越臺, 月臺)를 쌓았다.

모군이 궁 안에 쌓아둔 잡토(雜土·이것저것 마구 섞여 잡스러운 흙)를 지고 왔는데, 실로 4만여 짐에 이르렀다.

'
조선 고종(재위 1863∼1907) 때 경복궁을 중건하는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책 '영건일기'(營建日記)는 1866년 3월 광화문 앞에 넓은 대(臺)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궁궐 정문 앞에서 과거 널찍한 공간을 난간석을 두르고 한층 높인 구조였다.

조선 후기 화가인 심전 안중식(1861∼1919)이 1915년 그렸다고 알려진 '백악춘효'(白岳春曉)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세 부분으로 나눠 가운데를 임금에만 허락한 그 월대다.

25일 공개된 광화문 월대 발굴 조사 현장은 100여년 전 시간을 고스란히 보이는 공간이었다.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현장에는 길게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광화문 아래 드러난 100년 전 역사…왕과 백성이 만나던 '월대'
일부는 건물터를 다진 후 그보다 한층 높게 쌓은 기단인 듯했고, 일부는 과거 사람들이 오가던 계단으로 쓰인 것으로 보였다.

2m 정도 되는 장대석이 거의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정여선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광화문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오른쪽, 즉 동편에 남아있는 계단을 가리키며 "동쪽 계단지는 4단으로 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3단만 남아있다"고 말했다.

정 학예연구사는 "동편의 경우, 남아있는 유구(遺構·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가 절반 정도"라며 광화문 월대의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한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광화문 아래 3개의 문 가운데 가운데로 이르는 '어도'(御道)는 그 흔적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었다.

임금이 지나도록 만든 이 길은 너비가 7m에 이를 것으로 조사됐다.

발굴 현장 남쪽에는 계단의 양쪽을 장식하거나 마감하는 돌인 소맷돌을 받친 지대석이 드러나 있었는데, 남아있는 부분을 활용하면 어도 계단을 복원, 정비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연구소 측은 전했다.

광화문 아래 드러난 100년 전 역사…왕과 백성이 만나던 '월대'
현장에서는 궁궐의 안과 밖을 이어주는 월대 공간에 서린 '아픈' 역사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어도와 어도 계단 흔적 위로는 영문자 '와이(Y)' 형태의 전차 철로가 그대로 보였다.

학계에서는 1917년을 전후해 일제가 월대와 함께 주변 시설을 훼손하고 철로를 설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상수도관을 비롯한 여러 관도 월대 영역을 관통한 채 길게 이어져 있었다.

양숙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1923년 신문 기사를 보면 전차가 궁궐 앞을 지나가면서 (월대) 난간석이 헐릴 위기라는 기록이 있다"며 월대의 훼손 시점을 1920년대로 추정했다.

월대는 어떤 공간으로 쓰였을까.

자문위원을 맡은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는 월대가 '스테이지'(stage·무대) 역할을 했으리라 봤다.

신 교수는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같은 건물에서는 2단으로 된 월대를 둬 건물의 격을 높이고 건물 자체가 한층 웅장해 보이게끔 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광화문 아래 드러난 100년 전 역사…왕과 백성이 만나던 '월대'
그러면서 그는 "임금이 광화문을 벗어나 행차할 때는 월대를 통해야 했다.

임금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여러 복합적인 공간으로 활용되면서 소통 공간의 역할도 겸했으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고종 재위기 이전에도 광화문 앞에 월대가 있었는지는 조사가 더 필요한 부분이다.

조선왕조실록 등 옛 문헌에 따르면 과거 광화문 앞에서는 무과 시험, 왕실 의식, 외국 사신 맞이 등과 관련한 행사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월대의 존재 여부는 추후 조사를 통해 더 살펴봐야 한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양 학예연구관은 "발굴 조사는 경복궁 중건 당시 모습에 맞췄으나 하부 일부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그 이전에) 광화문 앞 공간을 활용한 행사는 있었으리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 측은 월대 공간 일부에서 연구 가치가 큰 흔적이나 유구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청은 추가 조사 및 복원 공사를 올해 10월까지 마무리하고, 광화문 월대를 시민들에 공개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복원 현장과 외부의 높이 차는 약 60∼80㎝ 정도"라며 "원래 지형대로 복원하되, 주변 도로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서울시에서 정비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화문 아래 드러난 100년 전 역사…왕과 백성이 만나던 '월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