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직원 미스김은 회식수당을 지급 받았을까
벌써 10년 정도 된 것 같다. 업무적으로 노동법을 주로 다루는 나에게 직업병을 유발시킨 드라마가 있었는데, 배우 김혜수 씨와 오지호 씨가 주연을 맡았던 ‘직장의 신’이 그것이다.

이 드라마는 외환위기 이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신분 계급이 생긴 듯한 한국 고용시장을 풍자적으로 보여줬는데, 김혜수 배우가 맡은 파견직원 미스 김은 매우 유별나다. ‘수당 없는 업무와 야근은 없다’는 좌우명을 내세우고 시계바늘이 저녁 6시를 지나는 순간 상사가 있든 없든 정확하게 자리를 일어서지만, 워드프로세스 자격증부터 심지어 중장비 기사 자격증까지 124개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주어진 업무를 근로시간 내에 완벽하게 처리하며 정규직 몇 사람의 몫을 하니 트집을 잡을 수도 없는 슈퍼갑 파견직원이기 때문이다.

오지호 배우가 분한 마케팅 영업부 장규직(이름부터 다분히 의도적이다) 팀장은 이러한 미스김이 정규직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 같은 존재라 영 마뜩지 않아 한다. 어느 날 장규직이 미스김에게 정규직의 위엄을 보이겠다며 "회사에서는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야!"이라며 퇴근 후 회식에 참여할 것을 명령하자 미스김은 다음과 같이 통쾌한 일갈을 날린다. "제게는 그런 불필요한 친목과 아부로 몸 버리고 간 버리는 자살테러와 같은 음주행위를 해야 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다만, 시간외수당을 지급한다면 회식에 참석하겠습니다"라고.

내심 원하지 않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상사와 동료의 기분을 맞추며 음주와 가무를 하는 회식은 미스김의 말처럼 별도 수당이 반대급부로 지급되어야 하는 근로시간에 해당하는 것일까.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시행을 앞두고 있던 4~5년 전쯤, 과연 52시간에 해당되는 근로시간이 무엇인지가 관심의 대상이었던 적이 있다. 회식, 교육, 출퇴근, 접대 등 근로계약에서 파생되었지만 근로자의 개인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다양한 시간들을 법적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법 준수의 전제 조건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요사이 포괄임금제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와 논의가 진행되면서 근로시간만큼 임금을 못 받는 이른바 ‘공짜 야근’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포괄임금제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다시 한번 근로시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법원은 기본적으로 근로계약의 내용이나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의 규정, 근로자가 제공하는 업무의 내용과 구체적 업무 방식, 사용자의 간섭이나 감독 여부,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인정할 만한 사정이 있는지와 그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17. 12. 5. 선고 2014다74254판결). 이러한 기준이 실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에 대해 평범한 직장인들이 솔깃해 할 만한 몇 가지 사례들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해외 출장

수원지방법원 2016. 11. 24. 선고 2016가단505758 판결에서는 해외출장을 다녀온 근로자의 경우 출ž입국 절차, 비행 대기 및 비행, 현지 이동 및 업무 등 해외출장 중 소비한 모든 시간이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보거나 식사를 해도, 면세점을 쇼핑하며 공항에서 출입국 대기를 하더라도 이에 대한 연장 근로수당이 지급된다고 하니 직장인들의 가슴은 설레게, 사용자의 가슴은 철렁하게 만드는 판결이 아닐 수 없었다. 이 판결은 출장이 근로자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용이 제한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다만, 이 사건은 1심 판결에 대해 사용자인 피고가 항소하지 않음으로 인해 1심 판결만 남아있게 되었다.

◆휴일 골프

대형 보험회사의 부서장급이었던 근로자는 고객 접대를 위해 토요일과 법정공휴일 또는 주휴일에 이루어진 47회의 휴일골프에 대해 1회 소요시간을 5시간으로 산정하여 그에 대한 휴일 또는 연장 근로수당을 청구하였다. 휴일골프 시간을 근로시간이라고 주장한 근로자측의 주된 근거는 휴일골프 비용이 업무관련성이 있어 법인카드로 계산을 한 것이고, 상당수의 라운딩이 자신의 자발적 의사 보다는 상급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치고 싶어서 쳤느냐. 위에서 시키니까 쳤지’라는 논리인 것 같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휴일 골프의 라운딩 대상자들, 라운딩 장소, 시간 등을 회사가 아닌 근로자의 상사인 상무 또는 근로자 등이 임의로 선정한 점, 휴일골프와 관련해 근로자 또는 상무 등 그 누구도 회사에 별도로 출장복무서와 같은 형식으로 보고하지 않은 점, 근로자도 자신의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고 좋은 대내외의 평가 등을 위해서도 자발적으로 이에 참여할 동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휴일골프의 근로시간성을 부정하였고(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4. 4. 선고 2017가단5217727 판결) 근로자가 대법원까지 다투었지만,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휴게시간

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대기시간이 근로시간으로 인정되는지 여부는 실제로 사용자의 지휘나 감독 아래 있으면서 언제든 다음 근로를 할 수 있도록 대기하는 시간인지 아니면 시간적 장소적 구애를 받지 않고, 다음 근로에 지장만 없다면 시간적 장소적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에 조명을 켜 놓고 가면(假免) 상태를 취하면서 급한 일이 있으면 즉각 반응할 의무가 인정된 아파트 경비원의 야간 휴게시간이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었는가 하면(대법원 2017. 12. 13. 선고 2016다243078), 미리 정해진 배차표 중간 중간에 식사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등 자유로운 사용이 보장되었던 버스 기사들의 대기시간의 근로시간성이 부정된 사례도 관찰된다(대법원 2021. 8. 12. 선고 2019다266485 판결).

◆회식·워크샵

회식이나 워크샵이 근로시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 판례에서 의미있는 선례가 나온 바는 찾을 수 없지만 고용노동부는 회식이 노동자 노무제공과 관련 없이 사업장 내 구성원의 사기 진작, 조직의 결속, 친목 도모를 위한 차원임을 고려해 기본적으로 회식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사용자가 참석을 강제하는 언행을 하더라도, 회식을 근로계약 상 노무제공 일환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내 밑으로는 참석하지 않으면 앞으로 회사 생활 어려울 줄 알아라’와 같은 상사의 엄포 때문에 회식에 참여했어도 임금지급의 대상인 근로시간이 되기는 기본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워크숍·세미나 등의 경우 사용자 지휘·감독아래 효과적인 업무 수행 등을 위한 집중 논의 목적이라면 근로시간으로 볼 수 있지만 공식 일정이 끝난 후 직원 단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워크숍은 회식과 마찬가지로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근로자는 시차를 견디고 해외출장을 가야 할 때도 있고, 내 아이의 생일을 뒤로하고 상무님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야 할 때도 있으며, 따뜻한 이불속을 박차고 나와 부장님이 소집한 일요일 산행에 나서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근로자가 내심 진정으로 원하는 활동이 아니었고 상급자의 요구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만연히 근로시간으로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근로시간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본연의 근로제공과의 직접적인 관련성, 사용자의 구체적인 지휘감독, 참여에 대한 선택권 여부, 불참시 실질적
·법률적 불이익이 있는지 여부 등이 좀 더 엄격하게 인정될 필요가 있다.

슈퍼갑 비정규직 미스김은 회식에 참석해서 완벽한 배합의 샤워주를 제조해 상사인 황부장을 흐뭇하게 했고, 참석한 정규직 직원들을 위해 육즙이 살아 있는 고기를 구웠으며, 노래방에서는 탬버린 댄스로 분위기를 살렸고 다음 날 당당히 60만원의 회식 수당을 청구해서 지급받았다. 그러나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는 말자. 황부장과 정규직 직원들에게는 사기 진작과 친목 도모를 위한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사용종속적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해야 하는 시간일 수 있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지금. 회식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면 생각해 보자. 과연 구성원 모두가 친목을 도모하고 사기를 진작할 수 있는 시간인지. 혹시 누군가 사용종속적 일방적인 관계에서 노무제공을 강요받고 있는 시간은 아닌지.

이세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