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됐다는 이유만으로 대기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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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행복한일 노무법인의 '직장내 괴롭힘 AtoZ'
행복한일 노무법인의 '직장내 괴롭힘 AtoZ'

그리고 며칠 후, A는 갑자기 인사팀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되었다면서 신고인과의 접촉을 금지한다면서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보건실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A는 출근해서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보건실에서 혼자 대기하면서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한 달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인사조치에 대하여 주변 동료들에게 직접 해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조사 기간 중 다른 동료들과도 직장 내 괴롭힘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수 없고, 경우에 따라 비밀유지 의무 위반이 되어 불리할 수도 있다고 전달받았기 때문입니다.
조사 결과 A의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내려졌습니다. 한 달여간의 분리조치가 끝나고 A는 B의 무고에 대해 화가 치밀었지만, 인사팀의 갑작스러운 분리조치는 본인의 인격과 명예를 훼손하는 조치이며, 부당 인사발령에 더해 이 또한 사용자의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A에 대하여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할 수 있을까요?
조사 기간 중에 피해근로자등이 원한다는 이유로 행위자로 지목된 자에 대하여 분리 조치를 취하는 위와 같은 경우가 실무상 종종 목격됩니다. 이때 법적 쟁점은 조사 결과와 관계없이 조사 기간 중 행위자에 대한 분리 조치가 부당한 인사발령인지 여부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행위로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위 사례에서 A에 대한 회사의 분리조치로 행해진 보건실에서의 한 달여간의 대기발령은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에서 정하고 있는 피해근로자등(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에 대하여 조사 과정 중에 취하여야 할 보호조치를 잘못 이해한 경우로 보입니다. 동법 제76조의3 제3항에서는 “사용자는 조사 기간 동안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하여 피해근로자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해당 피해근로자등에 대하여’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사용자는 피해근로자등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어, 엄밀히 말하면 조사 기간 동안의 분리를 위한 근무 장소의 변경은 피해근로자등에 대하여 그가 원하는 경우에 실시할 수 있으나, 행위자로 지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행위자의 근무 장소를 변경하는 것은 법률상 의무사항이 아닙니다. 나아가 행위자가 2차 가해 행위를 할 가능성이 크다거나 당장 행위자를 분리하지 않을 경우 조사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명백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업무상의 필요성이나 근로자가 입은 생활상의 불이익 등을 고려할 때 부당한 인사발령으로 평가될 소지가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 참고).
한편,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행위인지 여부는 분리 조치가 사회 통념에 비춰볼 때 업무상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업무상 필요성은 인정되더라도 그 행위 양태가 사회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어야 하는바(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업무 매뉴얼 참조), 행위자에게 분리조치를 하여야 할 특별한 사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분리조치 자체가 회사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의 행위자로 지목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행위자에 대한 인사조치(대기발령, 전보배치 등)의 형태로 분리조치를 취할 경우에는 위와 같은 사정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기업 내부의 사건 처리 지침상 조사 기간 중 행위자로 지목된 자에 대하여 인사조치를 하지 않고, 피해근로자등이 원할 경우 피해근로자등에 대하여 동 기간 중 인사조치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처럼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대응 요령과 방식을 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 상황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위 사례 이외에도 실무상 조사 과정 또는 조사 이후 처리 절차에서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처리 제도 설계에 대하여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백준기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공인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