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쓰기 전이라면, 이 영화를 꼭 보세요"
“난 여기서 일할 거야. 당신네처럼 나도 평범한 인생을 살 거야.”

18세 벨기에 소녀 로제타. 공장에서 해고된 그녀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공장을 난장판으로 만든 로제타를 쫓아내기 위해 경찰까지 등장한다. 평범하지 못한 삶으로 돌아간 그녀는 이날 이후 험난한 구직 여정을 시작한다.

다르덴 형제의 출세작


1999년 벨기에 출신의 장 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 형제가 팀을 이뤄 만든 영화 <로제타>의 도입부다. 이 영화는 1999년 프랑스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다르덴 형제의 이름을 유럽 전역에 알렸다.

이들은 로제타를 비롯한 대부분의 영화를 다큐멘터리처럼 찍는다. 핸드헬드(삼각대 장비 없이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기법)로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영화를 전개한다. 이 영화는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일상의 평온이 무너진 로제타 뒤를 끊임없이 쫓는다.


노동자의 삶을 사실주의에 기반해 묘사하는 영국의 거장인 켄 로치와 영화 궤적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켄 로치는 극적 사건이 넘쳐나고 정치적 메시지도 선명하다. 반면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상대적으로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지만, 어딘가 있을 법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사표 쓰기 전이라면, 이 영화를 꼭 보세요"

고단해도 인간성 잃지 않은 로제타


어른들은 모두 평범한 삶을 갈구하는 로제타를 옥죄는 역할을 한다. 영화 내내 그녀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생계 수단을 앗아가는 데만 몰두한다. 끊임없이 술을 마시고, 간혹 몸을 파는 그녀의 어머니는 로제타의 삶을 갉아 먹는 골칫덩이에 불과하다.

호수에서 겪는 로제타의 에피소드도 눈길을 끈다. 이런저런 문제로 다투다 호수에 로제타를 밀어 넣은 그녀의 어머니는 본체만체 호수를 떠난다. 호수 바닥 진창에 발이 잠긴 로제타는 겨우 수풀을 잡고서야 목숨을 부지했다.

이 호수를 관리하던 노인은 물고기를 잡는 로제타를 막아섰다. 호수 낚시는 직장이 없는 로제타의 생계와 직결된다. 이들은 로제타를 호수 속 진창처럼 비참한 삶으로 밀어 넣는 존재다.

팍팍한 삶에 좌절하지만 로제타는 이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그녀가 자주 찾는 와플 가게 판매원 청년 리케가 이 호수에 빠진 직후 보인 로제타의 행보만 봐도 그렇다.

리케가 사라지면 와플 가게 판매원 자리는 로제타에게 돌아간다. 이 같은 상황에 로제타는 잠시 고민하지만 로제타는 결국 리케를 건져낸다.

다르덴 형제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로제타처럼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존엄성과 양심을 지키려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다르덴 형제는 작품을 통해 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시종일관 유지한다.

지친 로제타는 결국 자살을 감행한다. 결심 직후 가스통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하던 그녀를 청년 리케가 막아선다.

앞을 막아선 리케를 바라보는 로제타는 울듯 말듯한 표정을 짓는다. 울분, 고통, 절망과 함께 팍팍한 삶을 견뎌 보려는 의지도 읽힌다. 평범한 삶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로제타의 잔상은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로제타의 마지막 장면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 엔딩과 겹친다. 12살 소년 주인공 앙투안 두아넬도 험난한 미래를 예감하며 비장한 표정으로 관람객을 응시한다.
"사표 쓰기 전이라면, 이 영화를 꼭 보세요"
○강력한 영화의 힘

현금을 창출하는 일자리는 ‘평범한 삶’을 유지하는 기반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빵과 장미’를 취득하는 수단이다. 로제타는 일자리의 가치를 다시금 깨우치게 해준다.

평범한 삶을 찾는 우리 주변의 로제타를 옥죄는 현실과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다. 이 영화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1999년 당시 벨기에 청년들이 일자리 제도를 손질하라며 집회에 나섰고 벨기에 정부는 이듬해인 2000년 청년고용정책 ‘로제타 플랜’을 실시했다. 50인 이상 사업장은 정원의 3% 이상을 청년으로 채용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정책의 실효성 논란은 있다. 벨기에 청년실업률은 로제타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20% 안팎을 오르내린다.

영화의 힘은 이렇게 강력하다. 영화가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로제타는 종종 2007년 프랑스 영화 <영광의 날들>과도 비교된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군인을 다뤘다. 영광의 날들로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 참전용사들이 받는 연금 규모가 프랑스 백인 퇴역군인 3분의 1 수준이란 사실이 조명된다.

이 영화를 본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연금법을 손질해 프랑스군에 복무했던 아랍·아프리카 출신 퇴역 군인들의 연금 지급액을 대폭 높였다.

다르덴 형제는 이달 신작인 <토리와 로키타>을 들고 처음 방한한다. 이를 계기로 국내 일부 극장에서는 다르덴 특별전을 연다. 여기서 로제타도 상영한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