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감정평가액 중 60%만 인정…이재민 청구 금액의 33% 인용 불과
"고의 중과실 아니고 자연요인도 있어…만족한 결과 아니라 안타깝다"
이재민들 "또 대못 박아…권리 회복할 때까지 항의" 불복 의사 밝혀
고성산불 260억 피해소송 이재민 일부 승소…"한전, 87억 배상"(종합2보)
2019년 4월 축구장 면적(0.714㏊) 1천700배가 넘는 산림 1천260㏊(1천260만㎡)를 잿더미로 만든 강원 고성산불의 피해보상을 두고 긴 법정 다툼 끝에 이재민들이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춘천지법 속초지원 민사부(김현곤 지원장)는 20일 이재민 등 산불 피해자 64명이 산불 원인자인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26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법원이 지정한 주택과 임야 등 분야별 전문감정평가사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감정액의 60%인 87억원과 지연손해금을 한전이 이재민들에게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인정된 비율로만 따지면 2019년 말 한전의 최종 피해 보상 지급금을 한국손해사정사회가 산출한 손해사정금액의 60%로 하도록 한 고성지역특별심의위원회 의결과 같은 비율이다.

이재민들은 총 265억여원을 청구했으나 재판부는 이 중 87억원만을 인용했다.

법원이 실시한 감정평가액이 한전의 감정평가액보다는 조금 더 컸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이재민들로서는 청구 금액의 33%만 인정받은 셈이다.

고성산불 260억 피해소송 이재민 일부 승소…"한전, 87억 배상"(종합2보)
이 점을 의식한 탓인지 재판부에서도 이례적으로 주문을 낭독한 뒤 "산불 사건 관련해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드리지 못하게 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인정된 손해액에서 피고의 책임을 60%로 제한했다"며 "피고가 고의 중과실로 화재를 발생시킨 게 아니고 당시 강풍 등 자연적인 요인 때문에 피해가 확산한 점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한전이 소유한 전신주의 설치상 하자로 인해 산불이 발생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전은 "전선이 단선된 건 이례적인 자연현상에 기인한 것이고, 전신주에 설치상 하자가 있더라도 하자와 원고들의 손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원고들이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받은 재난지원금, 보험금, 한전이 지급한 선지급금을 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선지급금만 전액 공제했다.

국가 또는 지자체 지원금은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로 지원되는 것이므로 한전이 부담해야 할 민사상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할 수 없고, 보험금도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할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신적 손해배상(위자료)에 대해서는 원고들이 산불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게 명백하고, 재산상 손해를 배상받는다고 해서 치유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해 각 700만원으로 정했다.

고성산불 260억 피해소송 이재민 일부 승소…"한전, 87억 배상"(종합2보)
재판부는 "마음이 무겁다.

다시 한번 산불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으나 이재민들은 법정에서 "왜 우리가 40%를 책임져야 하는지 설명해달라", "정말 이 자리에서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고 싶다", "어떻게 복구를 하라는 것이냐"고 토로했다.

재판부는 "민사 판결은 결과를 이렇게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는다.

조금 더 피해를 인정한 점을 고려해달라. 만족할만한 결과가 아니라서 죄송하다"며 거듭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경혁 4·4산불비상대책위원장은 "오늘 재판 결과가 또다시 이재민들에게 대못을 박았다"며 "재판부는 이재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게 아니라 100% 배상하라는 판결을 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그는 "감정평가 과정에서 피해 입증이 어려운 부분으로 인해 이미 엄청난 손해를 봤는데 또다시 40%를 이재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항소해 다시 재판이 열리면 이재민들을 구조할 수 있는 판결이 나와야 하고, 그래야만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권리를 회복할 때까지 끝까지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23일 이재민 총회를 열어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며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강릉산불에 대해서도 전선에 의한 사건으로 판명 나면 연대해서 강력하게 항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소송은 산불 피해자 21명이 2020년 1월 한전을 상대로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한전을 상대로 가장 먼저 제기된 민사소송으로, 이후 추가 소송이 잇따르면서 원고 수와 청구 금액 규모가 늘었다.

이들은 "한전의 최종 피해 보상 지급금을 한국손해사정사회가 산출한 손해사정금액의 60%(임야·분묘 40%)로 하도록 한 고성지역특별심의위원회 의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정 다툼을 선택했다.

재판은 법원이 지정한 주택과 임야 등 분야별 전문감정평가사의 피해조사 절차를 거치며 시일이 소요됐다.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리기도 했으나 양측 모두 이의를 제기하면서 결렬됐고, 변론이 재개돼 선고되기에 이르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