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흥 '함께하는 사랑밭' 부회장,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
"가족 중 장애인 있으면 가족 전체가 장애…정부 지원 확대 필요"
베트남전 장애 딛고 20여년 봉사…"역지사지 마음으로 살았죠"
"힘들었던 날들을 생각하면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어려웠던 과거가 오늘날 영광의 근원이 된 것 같아요.

"
오세흥(72) '함께하는 사랑밭' 부회장은 장애인, 다문화가정, 탈북민, 독거노인 등 소외된 이웃을 도우며 살아온 20여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휴대전화를 붙잡을 힘만 있다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봉사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는 그는 20일 제43회 장애인의 날을 기념식에서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았다.

올해의 장애인상은 1996년 한국이 제1회 루스벨트 국제장애인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제정돼 매년 장애를 훌륭하게 극복한 장애인에게 주는 상이다.

오 부회장은 스물두 살이던 1972년 베트남 전쟁에 파병됐다가 고엽제 후유증으로 장애인이 됐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베트남에서 보초를 설 때 미군이 비행기로 고엽제를 뿌리면 하늘에서 고엽제가 이슬비처럼 내렸다.

나무를 죽이는 약인 줄도 모르고 비처럼 시원해서 그냥 맞았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온몸에 고엽제를 맞은 대가는 십수 년에 걸쳐 나타났다.

그는 후유증으로 신장을 떼고 심장 혈관에 스텐트 2개를 삽입해야 했다.

지금도 조금이라도 빠르게 걷거나 날씨가 추워지면 쉽게 숨이 차 혀 밑에 뿌리는 스프레이 약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를 괴롭힌 것은 베트남 전쟁을 다녀온 뒤에 생긴 공황장애였다.

오 부회장은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몸이 성한 곳이 없으니 이렇게 살아 무엇하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정신장애를 인정받아 장애인으로 등록됐다.

오 부회장은 그러나 절망에만 빠져 지내는 대신 종교활동 등을 통해 힘든 시간을 극복했다.

그는 "그래도 나는 결혼도 하고 자식도 있지 않으냐"며 "나보다 상황이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신문을 무료로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시작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현재는 12년 전에 몸담은 사회복지 비정부기구(NGO) '함께하는 사랑밭'에서 저소득층, 장애인, 다문화가정, 독거노인,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재정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봉사활동을 한 오 부회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로 2013년에 시중은행 한 곳과 함께 홀트아동복지회에 배냇저고리 1997벌을 기부한 것을 꼽았다.

손주가 5명이 있다는 오 부회장은 손주들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이 인생의 또 다른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족 중 장애인이 있으면 가족 전체가 장애를 입은 것과 다름없다"며 정부가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경제적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