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미국에서 연 4.15%짜리 고금리 예금 계좌를 내놨다. 이제 애플은 어엿한 금융회사다. 애플페이로 결제하고, 당장 돈이 없어도 애플 단기대출로 원하는 상품을 사고, 애플 계좌에 저축까지 할 수 있다. 애플의 금융사업 본격화는 단기적으로 휴대폰 등을 판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금융업을 발판으로 전기자동차 등 미래 산업까지 넘보는 전략적 고도화를 꾀한다고 볼 수 있다. 애플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 입장에선 무척 위협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성장세가 정체되자 애플은 수년 전부터 금융 등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어느덧 서비스 매출 비중이 20%에 이른다. 특히 금융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2014년 모바일 결제 애플페이를 출시한 데 이어 2017년 송금 서비스인 애플캐시, 2019년 애플 신용카드, 올해 3월 선구매 후지불(Apple Pay Later)이 가능한 단기대출 서비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한 달 만에 고금리 계좌까지 출시했다. 미국 금융사조차 이런 애플을 경계할 정도다.

애플의 금융 서비스 확대 뒤엔 다양한 포석이 깔려 있다. 이용자들이 애플 생태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다양한 수익을 내려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확보해 새로운 서비스 출시, 확장도 가능하다. 이를 기반으로 경쟁이 치열한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도 지키려고 할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의 금융 서비스는 삼성페이 정도다. 집이나 자동차 키로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키, 가상자산을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 조회 등 다양한 기능을 넣었다. 하지만 애플과 달리 삼성페이의 서비스 확장엔 한계가 있다. 은산 분리 등 낡은 칸막이 규제 때문이다.

국내에선 애플 통장 같은 금융상품을 만드는 것이 무척 까다롭다. 예를 들어 최근 네이버파이낸셜과 하나은행이 출시한 ‘네이버페이 머니 하나통장’은 금융위원회 사전 허가를 받은 것이다. 50만 계좌까지만 한시적으로 판매하는 제약 조건도 붙었다. 삼성 등 다른 기업이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으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조건에서는 어떤 기업이 나서도 애플과 경쟁하는 게 불가능하다. 금융위는 애플 통장 구조를 면밀히 분석한 뒤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 블러(big blur) 시대에 정책당국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