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로 가기 전 정자를 냉동 보관하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동부 도네츠크주 슬랴반스크 출신인 비탈리 키르카흐 안토넨코와 나탈리야 부부가 그런 경우다.

이들 부부는 아이를 다섯명쯤 낳아 대가족을 이루기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남편 비탈리가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자원입대했고, 결국 전쟁터에서 전사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당시 아내 나탈리야는 임신 3개월이었다고 한다.

남편과의 사별로 홀로 남아 아이를 출산한 아내는 대가족을 이루고자 했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이 전쟁터로 떠나기 전 냉동해 놓은 정자로 둘째와 셋째를 임신할 계획이라고 한다.

NYT는 우크라이나 생식의학협회를 인용해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이들 부부처럼 정자를 냉동 보관하려는 의뢰가 전국적으로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협회 간부는 "냉동 보관된 정자는 전쟁터에서 남편이 사망하거나 부상으로 불임이 되는 경우에 대비할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 필요성도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일부 현지 병·의원에서는 사후에라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이가 태어나기를 바라는 군인 가족의 정자 냉동 보관 시술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이 확산하면서 우크라이나 의회에서도 지원 법안 제정 논의가 진행 중이다. 법안을 발의한 옥사나 드미트리예바 의원은 "우리의 유전자 풀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말했다.

NYT는 군인들의 정자 냉동 보관은 많은 우크라이나인에게 개인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혈통을 보존하는 애국적인 행위로도 받아들여진다고 전했다.

애인과 논의 끝에 휴가 기간 키이우의 한 병원에 정자를 냉동 보관하고 지난달 전쟁터로 복귀한 31살의 군인은 "나중에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킬 애국자가 줄게 하지 않으려는 것"도 결심한 이유의 하나로 설명했다.

군인들의 정자 냉동 보관은 과거 다른 나라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미국에서는 몇몇 업체가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 참전 군인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전사한 군인의 사전 동의를 전제로 가족이 몸 안에 있는 정자를 채취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이 추진된 적도 있다. 다만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예정된 고아"라는 반대론도 일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