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9번째 봄…학생·시민 등 추모객 발길 이어져 유족 "4월의 아픔, 몸이 기억…기록물 보존해 안전의식 되새겨야"
"한 학년 아래 후배예요.
꼭 오고 싶어서 왔는데…."
14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에 마련된 '기억교실' 앞에서 만난 20대 여성 A 씨는 말을 제대로 끝내지 못한 채 눈물을 쏟았다.
마침 교실로 들어서다가 책상에 놓인 선배들의 사진을 보고는 북받치는 슬픔에 울음을 참지 못한 것이다.
A 씨와 함께 온 여성은 "봉사동아리로 활동했는데 동아리 선배들이 대부분 사고를 당했다"며 "지겹다는 둥 세월호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이틀 앞둔 이날 기억교실에는 오전부터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2곳에서 단체 방문하는 등 150여명이 찾아와 단원고 학생과 교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기억교실은 세월호 참사 당시 숨진 2학년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사용하던 교실 10개와 교무실 1개를 그대로 복원한 추모공간이다.
참사 후 2년여간 단원고에 그대로 보존되다가 교실 부족 등의 이유로 2021년 4월 옛 안산교육지원청 자리에 세워진 4·16민주시민교육원으로 옮겨왔다.
4층짜리 기억관 건물의 3층에 2학년 1반부터 6반이 있고 2층에 7반부터 10반, 그리고 교무실이 있다.
교실 책상마다 "내 딸, 사랑해. 아빠가", "사랑하는 내 동생아, 언니야. 많이 보고 싶다", "얘들아 너무 보고 싶다", "선생님, 스승과 제자 사이로 꼭 다시 만나요" 등 희생자들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와 포스트잇이 놓여있고 사진 액자와 화분 등도 올려져 있다.
이곳의 시간은 사고가 난 9년 전 2014년 4월에 멈춰져 있다.
교실마다 벽에 붙어있는 일정표와 식단표에는 수학여행 출발 전날인 그해 4월 14일이라는 날짜가 적혀있다.
2학년 3반 교실 뒤편에는 3반 담임이던 고 김초원(당시 26세) 교사의 생일을 축하하는 제자들의 카드가 줄지어 걸려 추모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교무실의 김 교사 책상에는 4월 16일에 '생일'이라고 적힌 김 교사가 쓰던 달력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교무실에는 김 교사 외에도 숨진 교사들이 사용하던 책상, 가방, 교편 등이 있었다.
기억교실의 기록물 473점은 2021년 12월 국가 지정기록물 제14호로 지정돼 영구 보존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록물들은 엄격히 관리된다.
교실마다 온도·습도 측정기가 설치돼 보존에 적절한 환경을 유지하고 기록물 훼손을 막고자 방문객들은 소지품을 보관대에 두고 입장해야 한다.
벌레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생화 반입도 금지된다.
이날 A 씨도 선배들의 책상에 놓으려고 꽃다발을 가져왔지만, 교실 밖 다른 곳에 두기로 했다.
기억교실을 관리하는 4·16기억저장소의 원태오 기록팀장은 "기록물을 안전하게 관리·보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억교실이 이곳으로 이전한 뒤에 지난해 처음으로 1년을 온전히 보냈는데 작년에 2만여명이 방문했다"며 "보통 3월부터 방문객이 늘기 시작하고 4월에 가장 많이 찾는다"고 덧붙였다.
기억교실을 찾는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일은 유족 3명이 시간대를 정해 돌아가며 맡고 있다.
그중 한명인 고 허재강 군의 어머니는 "4월이 되면 그 아픔을 몸이 기억하는지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흐르곤 하는데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감정을 누르고 미소 지으려 노력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지어 보인 눈물 속 미소처럼 그는 슬픔과 함께 희망을 얘기했다.
그는 "참사와 관련된 공간, 현장을 이렇게 복원한 것은 기억교실이 세계적으로도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가 지정기록물을 넘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는데 등재가 되어서 이 기록물들을 잘 보존하고 널리 알려서 안전의 의미, 안전의식을 되새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이날 이곳을 찾아 추모한 뒤 "안전은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요건이자 교육의 중심"이라며 "아픔과 그리움을 넘어 내일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