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구하기가 쉬운 미국·유럽에서도 보기 어려운 특이한 유형입니다.”

약 20년간 마약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 A씨는 최근 발생한 서울 대치동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에 대해 “보이스피싱 범죄가 마약과 결합한 변종 형태로 그만큼 한국에 마약이 널리 퍼졌다고 볼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동안 마약은 자신 또는 주변인의 성적 쾌감을 위해 사용됐는데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로 퍼뜨린 사건은 경찰 입장에서도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한때 마약 청정국이란 얘기까지 듣던 한국 사회에서 마약 범죄가 진화하고 있다. 정부가 마약, 보이스피싱과 같은 범죄의 단속 수위를 높이면서 궁지에 몰린 범죄단체들이 수법을 진화시킨 것이다. 12일 경찰청에 따르면 정부의 강력 단속에 보이스피싱 범죄는 2021년 3만982건에서 지난해 2만1832건으로 약 30% 감소했다.

보이스피싱은 해외에 본사를 둔 총책이 대포통장·돈수거 등 각종 운반책을 모집하고, 역할 분담을 통해 통화 중인 피해자를 지능적으로 협박해 돈을 뺏는 방식이다. 2000년대 보이스피싱 범죄가 처음 나타났고 이후 범죄 피해자가 급증하자 제도권에서는 이를 막을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시나리오를 만드는 속칭 ‘개발팀’이 마약을 부유한 동네인 대치동과 결합시킨 새로운 대본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마약 가격이 현저하게 낮아진 것도 이번 사건의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마약유통상 B씨는 “마약이 다른 범죄 수단으로 쓰였다는 것은 그만큼 마약 가격이 싸졌고 유통이 쉬워졌다는 얘기”라고 했다. 필로폰은 주사기 한 개가 판매 기준인데, 이를 ‘한 작대기’라고 부른다. 한 작대기는 투약 13~14회분으로 시세는 약 50만원이다. 1회 투약분은 0.075~0.08g으로 3만8500원꼴이다.

국내 필로폰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생산되는데, 대치동 사건 총책들도 중국에 상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마약 담당 수사관은 “중국 현지 필로폰 가격은 1회분이 몇천원 선”이라며 “마약과 다른 범죄를 합친 수법이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경찰은 마약 음료를 처음 접하면 마약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 필로폰을 소량으로 접한 피해자들은 고카페인 음료를 섭취했을 때처럼 ‘집중력이 생겼다’고 착각할 수 있다”며 “하지만 반복 섭취하면 웬만한 자극엔 반응할 수 없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대검찰청에 마약 수사 컨트롤타워인 마약·강력부를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