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 중인 이승만·이정학 모두 상대에게 살인 책임 떠넘겨"
전북경찰, 5일 교도소서 첫 대질 조사…"진술 구체화 힘쓸 것"

여기 세 개의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공범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것.
다른 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르는 척하는 것.
나머지는 공범과 함께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

공범이 침묵한다는 가정하에 첫 번째는 자신은 무죄, 상대는 매우 무거운 처벌을 각각 받게 된다.

두 번째는 자신과 상대 모두 가벼운 처벌을 받고, 마지막 선택지를 고르면 둘 다 중형을 받는다.

물론 자신이 침묵했을 때 공범이 입을 열거나 죄를 뒤집어씌운다면 결과는 이와 반대가 된다.

게임이론의 대표 모델 중 하나인 '죄수의 딜레마'는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 행위가 나와 상대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다줄 때 주로 쓰인다.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범인인 이승만(53)과 이정학(52)은 '백선기 경사 피살사건'을 두고 둘 다 첫 번째 선택지를 골랐다.

은행강도부터 경찰관살해까지…흉악범의 엇갈린 '죄수의 딜레마'
4일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이승만과 이정학은 여섯 번에 걸친 경찰 조사에서 백 경사 죽음의 원인을 모두 상대에게 돌렸다.

사실 이승만과 이정학은 은행 강도살인 재판 때도 서로에게 살인에 대한 책임을 미뤘기에 이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다.

이 둘은 2001년 12월 21일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지하 주차장에서 현금 수송차를 승용차로 가로막은 뒤 은행 출납 과장 김모(당시 45세) 씨를 38구경 권총으로 쏴 살해하고, 3억원이 든 가방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17일 이승만이 권총을 쐈다고 보고 이승만에게 무기징역을, 이정학에게는 징역 20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승만은 선고 직전인 2월 13일 경찰에 또 다른 장기 미제 사건인 '백 경사 피살 사건 때 쓰인 총기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는 편지를 보내 이정학이 과거 경찰관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백 경사 피살 사건은 최근까지도 뚜렷한 용의자가 없었기 때문에 장기간 수면 아래 갇힌 대표적 미제 사건이었다.

은행강도 재판 과정에서 이정학이 자신에게 혐의를 떠미는 것을 본 이승만의 작심 폭로로 보이는 대목이다.

둘 다 김씨 살인에 관해서는 첫 번째 선택지를 골랐음에도 자신만 기약 없는 영어의 몸이 되자, 공범에 대한 분노가 치민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승만의 분노는 20년 넘게 묻힌 또 다른 미제사건을 푸는 열쇠가 됐다.

이승만과 이정학은 5일 예정된 대질조사에서도, 남은 항소심 재판에서도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선택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론상 첫 번째 선택지를 고르면 자신을 무죄를 받지만, 둘 다 침묵하지 않는 폭로전이 거듭되면 세 번째를 선택한 것과 같은 결말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백 경사 피살사건 실마리를 푸는 분수령은 수감 중인 이들을 상대로 한 대질조사가 될 전망이다.

경찰은 이들에게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져 각자 반응을 보고 남은 수사 방향을 정할 방침이다.

이후신 전북경찰청 형사과장은 "이승만과 이정학이 교도소에서도 뉴스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대질 때 예정한 구체적 질문에 대해서는 밝히기 어렵다"며 "몇 차례 대질조사를 통해 진술을 구체화하고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