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증시에서 돌풍을 일으킨 행동주의펀드들이 사실상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배당금 확대, 자사주 소각 제안 등으로 소액주주들의 기대를 받았지만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밀리면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KT&G·DB하이텍·태광산업…'찻잔 속 태풍' 그친 행동주의 펀드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정기주총에서 행동주의펀드가 상장사에 요구한 주주제안 대부분이 부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31일 태광산업 주총에는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주주제안한 액면분할, 주당 1만원 현금배당, 자사주 매입 등 3개 안건이 상정됐으나 표 대결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지난달 30일 JB금융지주 주총에서도 얼라인파트너스가 제안한 배당금 확대, 사외이사 선임 안건 등이 모두 부결됐다.

지난달 28일 KT&G 주총은 플래쉬라이트캐피털파트너스(FCP)와 안다자산운용 등 여러 행동주의펀드가 합세해 배당 확대 등을 요구했으나 7.08%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행동주의펀드 안건에 반대하면서 사측이 승리했다. 29일 열린 DB하이텍 주총에서도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자회사 물적분할 안건을 두고 반대하는 소액주주들과 사측 간 표 대결이 벌어졌는데 이 역시도 사측이 이겼다.

업계에서는 남양유업 주총에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 추천한 감사위원이 선임된 것이 행동주의펀드가 그나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사례로 꼽는다. 2020년 상법 개정으로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서 통과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행동주의펀드가 내세운 주주제안이 무리한 요구였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경영 상황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다수 행동주의펀드는 사측과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고 소액주주의 표심도 얻지 못해 주총 표 대결에서 줄줄이 패배했다는 것이다.

타깃이 된 기업들의 주가 변동성만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KT&G는 행동주의펀드들이 제안한 현금배당안이 부결되자 당일에만 주가가 2.4% 떨어졌다. JB금융지주도 연초 얼라인파트너스의 주주제안으로 배당 확대 기대가 커지며 1월에만 주가가 28.8% 올랐지만 이후에는 13.8% 하락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바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주주행동주의의 지속성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며 “단독으로는 기업의 행동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다른 투자자와 연합하거나 기관투자가 등을 우호세력으로 만드는 것이 필수”라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