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을 초래하는 말
은행 위기를 비롯해 여러 소란스러운 사건 와중에 생각나는 말이 있다. ‘말을 하기 전에 생각하라.’ 말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그 파장이 크다. 말 한마디에 국가, 세계에 큰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아마르 알쿠다이리 사우디국립은행(SNB) 회장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던 이달 초, 알쿠다이리 회장은 스위스 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에 추가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인터뷰했다. 그의 발언이 공개된 뒤 SVB 파산 충격은 대서양을 건너 CS를 위협했다. 결국 스위스는 자국 은행 UBS가 CS를 인수하도록 했다. 알쿠다이리 회장은 결국 사임했다.

은행 위기 부채질한 인터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말의 파급력에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사람 중 하나다. 막상 트럼프 전 대통령 본인은 후회하지 않을지 몰라도, 많은 미국인에게 그의 ‘폭풍 트윗’은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의회의사당 폭동 사건이 그의 발언과 관련이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패배한 2020년 미국 대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했고,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이 해야만 하는 일(투표 결과 거부)을 할 용기가 없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으킨 말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사람들은 불행해졌다. 의사당에 난입한 수백 명은 전과자가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폭동을 선동했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있는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내놓을 조사 결과는 공화당 경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생각 없는 공개 발언이 거대하고 피할 수 없는 정치적 혼란을 일으켰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는 경쟁자인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이들을 개탄스러운 집단(basket of deplorables)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말하기 전 숙고해야 한다는 지혜를 갖추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의 여러 실언 때문에 민주당은 그를 중심으로 다음 대선을 준비하는 게 난처해 보이기도 한다.

옐런 발언에 금융시장 요동

최근에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등장했다. SVB가 파산한 뒤 옐런 장관은 다른 은행의 예금을 보장할 수 있다고 했다가 다음에는 모든 예금을 보장하는 포괄적 보험 적용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 상반된 발언을 이어갔다. 옐런 장관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를 노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는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호전성과 치명적인 실수 사이를 오가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영토 분쟁이라고 표현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모두가 말실수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뉴미디어 시대에는 공개적 발언이 정치적인 탄도미사일이 될 수 있다. 한 번 발사되면 되돌릴 수 없다.

이 글은 영어로 작성된 WSJ 칼럼 ‘Words That Cause Catastrophes’를 한국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