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도쿄 벚꽃놀이도 좋지만…(下)
먹고살 만해지면 두 가지 마음이 고개를 든다. 더 잘살고 싶은 마음, 더 놀고 싶은 마음이다. 이율배반적이다. 얼마 전 모기업 창업 2세가 아버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요즘 직원들 출근이 너무 늦다. 휴가도 많이 가는 것 같고….” 2세는 무척 답답한 모양이다. 세상이 변했는데도 창업주 생각은 과거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변한 것은 맞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열심히 일하는 국민과 기업과 국가가 잘산다는 것이다. 우리가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 시대로 가려면 1인당 8000달러씩 소득이 늘어나야 한다. 인구 5000만 명 기준으로 약 4000억달러, 500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국내총생산(GDP) 500조원은 어느 정도일까. 국민 소득은 기업 실적과 엄연히 구별되지만, 기업 규모와 경영지표에 빗대 대략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다. 연간 50조원의 영업이익 창출과 30조원의 인건비를 지출하는 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6개 이상 새로 생겨나야 한다. 그것도 삼성전자 이익이 국내에서 100% 만들어지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 정도의 국부를 새로 창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필자도 선뜻 가늠이 안 된다.

하지만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넘어오는 과정은 훨씬 힘들고 고단했다.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하는 사장들은 기저귀를 차고 들어갔다. 언제 끝날지 몰라 용변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10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가 다반사였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이라고 비판하기엔 너무나 절박하고 결사적이었다. 취재기자 시절, 이른 아침에 서울 계동의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집무실을 찾은 적이 있다. 오전 6시였는데도 결재받으려는 임원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아들들을 모아 새벽 3시에 아침 식사를 했다. 요즘 말로 창의성이 부족해서, 일하는 방식이 비효율적이어서 이렇게 부산을 떨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성장이 멈추면 모든 것이 멈추는 나라가 한국이다. 일자리도, 소득도, 복지도 다 무너진다. 문화 예술 부문의 외형적 발전이 두드러지고 삶의 질에 대한 국민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상황이다. 성장과 소득이 과거 신흥국 수준으로 후퇴하는 것은 상상조차 힘든 재앙이다. 위태롭기 그지없는 안보 상황과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과 재정적 여유를 필요로 한다.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에 비해 현재의 삶을 중시하고, 빚을 내서라도 여행과 소비를 즐기며, 경제적 사회적 부담이 거추장스러워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세태조차 세계적 산업과 기업이 양질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제 어쩔 수 없이 1%대 저성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인구가 줄고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었으며 개발 시대의 기업가정신이 퇴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1%대를 선선히 용인하면 경제는 제로 성장, 나아가 마이너스 성장까지 밀린다. 우리 경제는 에너지와 원자재 불모 구조다. 무언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고사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동북아시아 변방의 작은 나라에 부지런하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모여 용케도 잘 버텨왔다.

이대로 맥없이 주저앉는다면 60년 공든 탑이 무너진다. 원·달러 환율 1300원은 더 이상 고환율이 아니다. 강달러 여파라고만 볼 수도 없다. 기로에 선 국제 경쟁력과 신산업 혁신 정체의 결과다. 챗GPT 등장으로 예고된 인간과 기계의 세기적 대결에 한국 기업은 없다. 알고리즘은 마이크로소프트가 투자한 오픈AI, 딥러닝 기술 구현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그리고 GPU 생산은 대만 TSMC가 각각 맡고 있다. 엔비디아는 GPU 사업에 28년, 인공지능(AI)에 12년을 쏟아부었다. TSMC는 알려진 대로 파운드리 분야에서 40년 외길이다. 이제 와서 국내 기업들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탓할 수는 없다. 우리도 할 만큼 했다. 그러고도 이런 격차가 생겼다. 다른 업종으로 눈길을 돌려봐도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정도를 빼고는 새롭게 내놓을 것이 없다. 가전 TV 철강 석유화학 등은 글로벌 과점체제의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다. 사방의 정세가 우리에게 이롭지 않다. 노동은 과보호되고 자본과 인재는 달아난다. 매미를 노리는(搏蟬) 사마귀(螳螂)는 등 뒤로 다가오는 위험을 보지 못한다. 잠깐 만심하는 사이에 승패가 가려지고 생사가 결판난다. 원·엔 환율 1000원 시대, 도쿄와 오사카의 벚꽃을 즐기면서도 당랑박선의 경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