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코퍼레이션 30대 해외 법인장 6명이 지난달 서울 본사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허결 미국 버섯법인장, 김충기 영국 스미시머시룸 법인장, 사공혁 호주 지게차법인장, 이명우 현대아그로법인장, 이종빈 호주 불라파크법인장, 신동진 현대패키징법인장.  현대코퍼레이션 제공
현대코퍼레이션 30대 해외 법인장 6명이 지난달 서울 본사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허결 미국 버섯법인장, 김충기 영국 스미시머시룸 법인장, 사공혁 호주 지게차법인장, 이명우 현대아그로법인장, 이종빈 호주 불라파크법인장, 신동진 현대패키징법인장. 현대코퍼레이션 제공
“매일 업무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문을 잠그고 퇴근할 때마다 새삼 ‘내 사업’이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업이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이봐, 해봤어?’라는 정주영 창업회장의 말을 떠올립니다.”

지난해 말 현대코퍼레이션 호주 지게차판매법인장으로 선임된 사공혁 법인장은 1989년생으로, 2014년 입사한 10년차 직원이다. 대부분의 종합상사를 비롯한 민간 대기업에선 과장급에 불과한 연차지만 ‘상사맨의 꿈’으로 불리는 해외 법인장에 파격 선임됐다.

21일 현대코퍼레이션에 따르면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된 해외법인 일곱 곳 중 여섯 곳의 법인장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인 30대 직원이다. 영국 외에 캄보디아 호주 미국법인에도 ‘나홀로’ 부임해 발군의 성과를 내고 있다. 사공 법인장을 비롯해 김충기 영국 스미시머시룸 법인장(1984년생), 이명우 캄보디아 현대아그로법인장(1983년생), 이종빈 호주 불라파크법인장(1990년생), 신동진 캄보디아 현대패키징법인장(1983년생), 허결 미국 버섯법인장(1990년생) 등이 주인공이다.

현대코퍼레이션그룹의 모태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이 1976년 설립한 현대종합상사다.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의 주력은 해외 식량사업이다. 식량사업은 트레이딩과 달리 처음부터 시장을 개척하고, 현지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하는 신사업이다. 기존 종합상사 업무와는 다른 방식의 혁신이 필요했다. 그룹을 이끄는 정몽혁 회장은 MZ세대에 주목했다. 그는 정주영 창업회장의 다섯째 동생인 정신영 씨의 외아들이다. 정 회장은 상사업체가 지닌 역량과 자원에 더해 비즈니스 트렌드에 민감한 30대 MZ세대의 창의력이 더해지면 무한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봤다.

파격 인사실험은 2019년 9월 김충기 매니저를 영국법인장으로 선임하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 10월 캄보디아에서 골판지와 필름을 만드는 패키징법인의 수장으로 신동진 매니저를 발령냈다. 정 회장은 이들에게 “해외 법인을 세계에 거점을 둔 스타트업으로 운영해 달라”는 특명을 내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30대 법인장들이 발품을 팔아 거래처를 늘리면서 해외 거점별 매출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회사 내부에선 30대 직원을 법인장으로 보내는 결정에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컸다. “어린애들이 뭘 하겠느냐”는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30대 법인장들이 모두 단기간에 놀라운 성과를 내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인사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현대코퍼레이션은 현대중공업그룹의 건설기계 계열사인 현대제뉴인의 지게차를 호주에서 판매하기 위한 법인을 설립했다. 법인장으로 건설기계팀에서 근무하던 사공 법인장을 전격 발탁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열정 및 능숙한 외국어 능력을 봤다고 했다.

사공 법인장은 지게차 판매뿐 아니라 렌털사업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사업을 진행할 때마다 만나는 상대방이 대부분 50대 이상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면서도 “나이가 어려 능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전문성을 꾸준히 쌓고 있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