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이제 한국이 美에 요구할 차례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 13일 알래스카의 석유 시추 계획인 ‘윌로 프로젝트(The Willow drilling project)’를 승인했다. 북극 인근에서 30년간 6억 배럴을 채굴하겠다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환경단체들이 집단으로 소송을 내는 등 반발이 거세다.

공약 무너뜨린 바이든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캠페인에서 연방 소유 부지에서 신규 시추를 막겠다고 공약했다. 작년 1월 취임 직후 이튿날 초대형 송유관 사업인 키스톤XL 허가를 취소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돌아선 것이다. 이는 내년 대선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승리하려면 유가 안정이 핵심이어서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바이든을 바꾼 인물 중 하나로 알래스카주 출신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인 리사 머카우스키를 꼽는다. 그가 지난 2년간 지속적으로 대통령을 지지하고 설득해왔다는 것이다. 폴리티코는 ‘머카우스키가 바이든의 석유 시추 허용으로 대승을 거뒀다’는 기사를 썼다. 의회 정보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인 머카우스키는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 트럼프가 주도한 법안 중 73%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 들어선 79%를 지지했다. 백악관을 지속해서 도와줬고 결국 바이든의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는 얘기다.

미국 정치의 속사정을 자세히 소개한 것은 다음달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읽었으면 해서다. 미·중 갈등이 심화한 뒤 한국 기업들은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그런데 지금 그 투자 건 하나하나가 역경에 부딪혔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투자는 보조금을 받아도 적자를 낼 판인데 미국 정부는 갑자기 반도체 시설 접근 허용, 예상 초과 이익 공유 등 까다로운 조건을 들이대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현지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여파로 승승장구하던 전기차 판매량이 지난 2월 전년 대비 14% 감소로 돌아섰다.

포스코 등 한국 철강업체는 여전히 제한된 쿼터에 묶여 있다. 트럼프 전 행정부가 2018년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매겼을 때 한국은 관세 대신 수출량을 직전 3년 평균의 70%(연 267만t)로 제한하는 쿼터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뒤 2021년 10월 유럽연합(EU)에 연 330만t 쿼터를 주고, 그 이상에만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쿼터 이상을 수출할 수 없는 한국과는 다른 조건이다. 워싱턴을 탐문해보면 한국 정부가 이런 기업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섰는지 의문이 든다.

줄 건 주되 받을 건 받아야

미국은 대국이다. 머카우스키처럼 꾸준히 설득해야 한다. 특히 워싱턴 정치에선 이슈 해결을 위해 윌로 프로젝트처럼 ‘주고받기식’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현재 미국의 가장 큰 이슈는 중국이다. 그리고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과 일본은 꼭 필요한 동맹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 먼저 관계를 정상화하고 미국 주도의 쿼드(Quad) 동맹 가입 의사를 밝히는 등 미국이 원하는 걸 먼저 다 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미국으로부터 받은 건 별로 없다. 심지어 미국에 투자하는 우리 기업들은 점점 더 곤경을 겪고 있다. 다음달 백악관을 찾는 윤 대통령이 어떻게 바이든 대통령을 설득하고 무엇을 얻어낼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