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 경험 '없다' 2019년 83.1%→2021년 92.1%…'있다' 8%도 주목해야
"학생인권 과잉? 여전히 주요 결정에서 학생들 배제…상호존중 교육 고민"
[학생인권조례 10년] ① 체벌 대신 '운동장 돌고 와'…갈 길 먼 학생인권
[※ 편집자 주 = 전북학생인권조례가 올해로 시행 10년째를 맞았습니다.

지난 10년간 학생인권이 나아졌다는 의견과 함께 두발규제와 복장 단속 등 아직도 인권 침해가 만연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또 일각에서는 학생인권과 함께 교권 보호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전북도교육청은 최근 교사, 학생, 교직원, 학부모 등 모든 교육 주체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전북교육인권조례를 입법예고했습니다.

연합뉴스는 교육 인권을 둘러싼 주요 현황과 우려, 바람 등에 관한 교육 주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세 편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

#1. 갑자기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11시까지 한 곳을 제외한 모든 문을 잠그고 그 앞에서 선생님이 감시하겠다고 공지를 했어요.

야자가 끝나기도 전에 교실에서 나가는 학생들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요.

그 방송을 듣고 나니 학생들은 '교사의 말에 복종하며 감금된 상태로 공부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A(18)양)
#2. 미션스쿨을 다녔는데 8시 40분까지 등교를 하고 나면 매일 10분간 아침 예배에 참여해야 했어요.

수요일 1교시는 예배 시간이었고 종교로 수행평가도 봤어요.

종교 수업을 듣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이 학교에 진학한 걸 후회했어요.

선생님은 '네가 오고 싶어서 온 학교니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더라고요.

(B(14)군)
2010년대 초반 학생 인권보장을 위한 조례제정 운동이 일어나면서 경기, 광주, 서울에 이어 전북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 2014년 8월부터 시행됐다.

조례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지만 10년이 지나도록 인권이 교실 깊숙이 자리 잡지 못했다는 목소리도 크다.

[학생인권조례 10년] ① 체벌 대신 '운동장 돌고 와'…갈 길 먼 학생인권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가져온 변화로 '학생들의 의견 반영'을 꼽는다.

전북학생인권조례는 '학교의 장은 교육활동에서 학생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학생은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모을 권리를 가진다', '학생자치기구는 학교 운영, 규칙 등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권리를 가진다' 등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지난해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가 발표한 '2021 학생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 규칙을 만들거나 바꿀 때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질문에 58.6%의 학생이 '대체로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다'고 응답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긍정적인답변이 각각 50% 미만이었다.

훈육이라는 명목하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체벌이 사라진 것도 조례가 일으킨 바람이다.

같은 조사에서 '학생을 체벌한 적이 있는가'는 질문에 '있다'는 교원들의 응답은 2019년 16.9%, 2020년 12.3%, 2021년 7.9%로 점차 줄었다.

체벌을 경험한 적 '없다'는 학생들의 응답도 2019년 83.1%에서 2020년 87.7%, 2021년 92.1%로 매년 늘었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채민 활동가는 "체벌이 옹호되던 때가 있었지만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학교 안에서 체벌 금지는 물론 모욕적인 말이나 혐오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기본 권리를 보장받은 학생들은 자신을 '공부하는 기계'로 여기지 않게 된다"면서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교육의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짚었다.

[학생인권조례 10년] ① 체벌 대신 '운동장 돌고 와'…갈 길 먼 학생인권
이러한 변화에도 학생인권조례가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다'는 시선들이 많다.

체벌을 경험한 적 없다는 응답이 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뒤집어보면 여전히 8%의 학생들이 체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전북평화와인권연대가 발간한 '전북학생인권 인터뷰 기록집'에 따르면 인터뷰한 8명의 학생 중 상당수가 간접 체벌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학교에 슬리퍼를 신고 오면 운동장을 돌거나, 수업 시간에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면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해야 했다.

교복을 규격에 맞게 입지 않을 경우 교실에 남아 흰 종이에 빡빡하게 깜지를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군산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자퇴한 C양(18)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절대 접촉해선 안 되거나 휴대전화를 소지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이러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교실에 서 있거나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등 벌을 받아야 했다"며 "학생 인권이 존중되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학교의 규정으로 학생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제한하는 탓에 조례를 형식적인 선언에 그치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다수의 학교에서 교칙 외 별도의 생활 규정을 두거나 기숙사 생활 규칙을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D양(16)은 "교칙에는 '복장은 민주적으로 한다'고 애매하게 적혀있는데, 학교에서 별도로 나눠준 오리엔테이션(OT) 자료에서는 치마와 조끼 길이 등을 규정한 '교복 규격에 맞게 입어야 한다'고 명시했다"며 "치마와 조끼 길이 마음대로 조절하면 벌점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 김고종호 정책실장은 "체벌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체벌 금지권고가 나온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8%나 체벌을 경험한다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며 "누군가는 '학생 인권 과잉'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학내 주요 결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배제되고 자유나 사생활을 제한하는 규제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 인권이 보장돼 교권이 축소됐다고 바라봐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 정책실장은 "인권은 한쪽이 향상되면 한쪽은 쪼그라드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상호존중에 기반한다"며 "학생과 교사가 서로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