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명위원회 설득해 일본식 '자성대공원' 명칭 변경 성과
[휴먼n스토리] 일제 잔재 없애고 '부산진성' 이름 찾은 주민들
"일제 잔재 명칭으로 불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주민들이 한번 바꿔보자. 그래서 피켓을 들게 됐습니다.

"
지난 28일 부산 동구 범일동 '부산진성공원'에서 만난 정순태 래추고 마을 관리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의 말이다.

정 이사를 만난 부산진성공원은 올해 1월 4일 전까지만 해도 자성대공원으로 불리던 곳이다.

자성대공원은 1944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고시로 이름이 지어진 뒤 79년간 불린 공원 명칭이다.

정 이사장에 따르면 자성대 공원의 명칭 속 '자성'은 일본식 성곽 구조 개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본식 성곽 구조는 본성인 '모성'과 지성인 '자성'으로 나뉘는데, 자성대의 '자성'도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정 이사장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동구 좌천동에 증산왜성을 본성으로 짓고, 이곳에 본성 방어를 위한 왜성을 지어서 '자성'으로 불리게 됐다"면서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은 성곽과 성문을 우리의 성 형태로 수리해 '부산진성'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부산진성이 맞는다"고 말했다.

그는 "1945년 해방되면서 명칭을 변경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 명칭을 사용해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휴먼n스토리] 일제 잔재 없애고 '부산진성' 이름 찾은 주민들
래추고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주민들이 이름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것은 지난 2020년이다.

래추고 사회적협동조합은 부산진성공원 주변 낙후된 마을을 도시재생으로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주민 주도로 2019년 설립된 조합이다.

정 이사장은 "공원 명칭 변경에 앞서 부산시가 2020년 부산시기념물인 부산진성의 명칭을 기존 일제 잔재 명칭인 '부산진지성'에서 '부산진성'으로 바꾸었다"면서 "부산진지성의 '지성' 표기 역시 일본식 성곽 개념이라 바꾼 것인데, 공원 이름은 국가 지명이라는 이유로 바꾸지 않고 놔두어 주민들이 직접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래추고 협동조합 주민들은 공원 명칭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피켓을 제작해 150여 명의 주민이 100일간 릴레이 캠페인을 했다.

2021년 1월 당시 주민협의체 회장을 1번 주자로 시작해 매일 1~2명씩 부산진성 공원에서 피켓을 들고 바른 이름 알리기에 나섰다.

당시 주민협의체에서 역사문화분과를 담당했던 정 이사도 두 번째로 피켓을 들었다.

정 이사는 "어린이대공원, 부산시민공원같은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도 나가 홍보 활동을 하고 지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을 찾아다니며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의 지명을 홍보하는 등 노력했다"고 밝혔다.

[휴먼n스토리] 일제 잔재 없애고 '부산진성' 이름 찾은 주민들
주민들의 노력이 이어지면서 관할 기초단체와 정치권에서도 힘을 보탰다.

구의원, 구청장, 지역구 국회의원, 부산교육감 등도 서명서에 이름을 올리며 피켓을 들었다.

마지막 100번째 주민으로는 박형준 부산시장도 나서 국가 지명위원회에 명칭 변경을 촉구했다.

이후 명칭 변경을 위한 본격적 절차가 시작되면서 올해 1월 결국 일제 잔재를 없애고 제 이름을 찾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

정 이사장은 명칭 변경을 계기로 부산진성 일대가 좀 더 주목받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 이사장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의 역사는 사실 부산진성공원 주변에서 다 이뤄졌고, 조선통신사가 출발한 영가대도 이 주변에 있었다"면서 "부산진성이라는 이름이 없어졌듯이 여기서 일어난 역사의 중요한 일들이 다 묻혀버렸는데 명칭 변경을 계기로 이 지역에서 자라는 아이들한테 자부심이 되는 역사가 다시 조명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산 북항에 엑스포가 유치된다면 엑스포 개최 부지와 바로 인접한 부산진성공원은 관광자원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면서 "주민들이 앞장서 그런 기반 작업을 닦아놔야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