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지역에 자국산 무기 수출·재수출 엄격히 통제
우크라 무기지원 행렬 방해하는 '의외의 복병'…중립국 스위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지원 행렬에 '중립국' 스위스가 의외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위스는 군수산업이 매우 발달한 나라지만 국제법으로 중립국 지위를 보장받은 '영세 중립국'으로서 다른 나라의 전쟁과 철저하게 거리를 유지한다.

이 원칙에 따라 스위스는 분쟁 지역에 자국산 무기·탄약을 수출하지 않고, 이미 수출된 무기도 다른 나라를 거쳐 분쟁지역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통제한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도 이 원칙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 때문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대공방어망·전차 등에 사용되는 스위스산 탄약이나 무기, 부품 등을 쌓아놓고도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WSJ은 전했다.

실제로 스페인과 덴마크는 '아스파이드' 대공방어망, '피라냐Ⅲ' 보병전투용 장갑차 등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려다 스위스의 반대로 뜻을 접었다.

두 무기체계는 모두 스위스산 부품을 활용한다.

독일은 수십 년 전 비축한 스위스산 게파르트 자주대공포 탄약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려 했으나 이 역시 스위스의 반대에 막혔다.

게파르트 대공포는 우크라이나가 이란제 자폭드론을 방어하는 데 효율적으로 활용돼왔으나 최근에는 탄약을 아껴야 하는 처지다.

문제는 갈수록 스위스산 무기 수출 허용이 절실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꽤 많은 서방국가 우크라이나 지원용으로 자국의 무기 비축량을 상당 부분 소진했다.

여기에 더해 우크라이나의 포탄·로켓탄 소비량은 서방 정보당국의 기존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의 생산량도 우크라이나의 소비량을 따라잡기 어려울 지경이라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서방의 추가 무기 지원을 거듭 요구하는 당사국 우크라이나는 스위스를 직접 찾아가 '원칙 변경'을 호소할 방침이라고 WSJ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의회 외교위원회는 스위스 수도 베른에 공식 방문단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의회의 올렉산드르 메레즈코 외교위원장은 WSJ에 "스위스가 우크라이나를 더욱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위스는 이런 주변의 압박에도 중립국 지위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립국 지위는 스위스 헌법에서 정해진 원칙이라는 것이다.

다만 스위스 의회도 주변국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스위스산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독일이 스위스 방산업체와 계약 중단까지 거론하고 나서자 의회에서도 자국의 방위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무기 재수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스위스는 전 세계 14위 무기 수출국이다.

스위스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방위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에 이른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달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중립인지 아닌지를 따질 게 아니다"라며 "자주권을 존중할 것인지, 법치주의를 수호할 것인지, 유엔 헌장을 사수할 것인지의 문제"라며 스위스를 압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