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교육 금지 놓고 탈레반 내분…"일부 장관, 딸들 유학보내"

"최고지도자 아직 1천400년전에 살아"…장관들 공개 비판하기도
일부 지역서 '비밀 여학교' 용인하고 "여성 노동자 필요" 서한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가 내달 개학을 앞두고 여성 교육 금지 문제로 내부 갈등을 빚고 있다고 26일(현지시간) 영국 더타임스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내부 분열은 크게 탈레반 최고지도자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 세력과 일부 장관을 필두로 한 그 반대 세력 간에 일어났다.

아쿤드자다는 베일 속에 갇힌 인물로 18개월 전 재집권 이래 그를 만나려는 국제사회의 갖은 시도에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탈레반의 행적을 좇아온 파키스탄 언론인 아르샤드 유수프자이는 "그는 여전히 1천400년 전 세상에 살고 있다"며 "그의 모든 것은 종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아쿤드자다는 정치적 감각도 없을 뿐 아니라 국제 원조 중단의 심각성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유수프자이의 설명이다.

유수프자이는 "그는 '지난 20년간 지하드(이교도를 상대로 하는 이슬람 전쟁)에서 우리 힘으로 살아남았고 알라가 도울 것'이라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최근 탈레반 내부 분위기는 탈레반 1차 집권기인 20년 전과 사뭇 다르다고 타임스는 분석했다.

아쿤드자다 중심의 강경파 외에도 실용주의자들과 해외 경험자들이 혼재돼 있고, 과거와 달리 국민 수백만 명이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탈레반 장관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여성 교육 금지를 지지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카불 기반 싱크탱크 아프가니스탄애널리스트네트워크(AAN)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장관들은 딸들을 파키스탄이나 걸프국 학교로 진학시키기도 한다.

최근에는 여성 교육 금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시라주딘 하카니 내무부 장관은 지난 12일 한 신학대학 졸업식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체제 전반의 평판을 해치는 일은 우리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며 "이러한 상황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탈레반 창설자 물라 오마르의 아들 물라 야쿠브 국방부 장관도 지난 16일 "(정부는)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에 귀를 기울여 육체적, 정신적, 종교적으로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종교 지도자 마울비 압둘 하미드는 17일 금요 예배에서 소녀들을 학교와 대학에 가지 못 하게 하는 것이 "기도를 금지하는 것과 같다"며 정부를 직접적으로 질타하기도 했다.

지난달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해 탈레반 장관 3명을 만난 얀 에겔란드 노르웨이 난민 위원회(NRC) 위원장은 "명백한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이 가운데에는 최근 여성이 구호활동 참여를 금지한 경제부 장관도 포함됐다.

에겔란드 위원장은 "장관들 모두 여성 동료 없이는 일할 수 없다는 뜻을 나타냈고 (여성 교육) 금지에 반대했다"며 "경제부 장관조차 '우리 부처에 많은 여성이 있고 숙련된 여성 노동자들이 필요하지만 어쩌겠냐'고 반문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열이 실제 변화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지만, 아프가니스탄 일각에서는 한 줄기 희망도 감지된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유엔에 따르면 일부 지방의 탈레반 지휘부는 지역 학교 운영을 허락하거나 '비밀학교'를 눈감아 주는 방식으로 약 80만 여학생들의 교육을 용인하고 있다.

보건부와 교육부 장관들은 부처에 여성 공무원 채용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발신하기도 했다.

탈레반은 2021년 재집권 이후 여러 유화 조치를 발표했다가 지난해 중·고등 여학생 등교를 전면 금지한 데 이어 12월에는 여성들의 대학 교육까지 금지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에 대해 원조 중단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과 남성 봉사자를 통해서라도 원조를 이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