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분야 의사수 부족 문제 맞물려 의대 증원 논의 주목
'쏠림 오히려 더 심화' 우려도…"이공계 보상 확대해야"
갈수록 심해지는 의대 쏠림, 의대 정원 늘리면 해결될까
최근 마무리된 2023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심화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공계 인력 유출에 대한 우려가 다시금 커지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반도체 인력 양성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아 반도체학과 지원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음에도, 정작 반도체학과에 합격한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대거 등록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정부가 느끼는 위기감 또한 높아진 분위기다.

대통령실도 극심한 의대 쏠림 현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범부처 솔루션'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아과 등 필수의료 분야 의사 수 부족 문제까지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책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주장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나 한편에선 의대 쏠림 현상을 오히려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18년째 묶인 의대 정원…증원 논의는 여전히 신중
26일 교육부에 따르면 의과대학 정원은 2006년부터 3천58명으로 동결돼 있다.

지난 2020년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22학년도부터 10년에 걸쳐 모두 4천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가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한 바 있다.

최근 정부 안팎에서 다시 거론되는 의대 증원 논의는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뇌심혈관계 등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수 부족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진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의사단체와 의정협의를 재개하면서 의대 증원 문제도 논의 테이블에 올리겠다고 밝혔지만 증원 규모, 시점 등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의사 수 확충을 위한 의대 증원이 결과적으로 의대 쏠림 현상 완화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우선 의사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기대 소득 수준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의대 인기도 지금보다 하락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이는 의대 쏠림 현상이 결국은 다른 이공계 직종과의 소득 수준 격차, 처우 격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의대에 가는 통로를 넓히면 오히려 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국가적 통제가 없으면 지방에서 수도권 병원으로의 의사 쏠림, 필수 의료가 아닌 인기 진료 분야로의 쏠림 또한 여전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대 정원을 늘리면 오히려 의대 쏠림 현상이 폭발할 수도 있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의대 정원을 늘리면 기회가 상대적으로 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의대 쏠림, 의대 정원 늘리면 해결될까
◇ 이공계 보상 확대 등 획기적 대책 나올까
결국 의대 쏠림 완화, 즉 '이공계 인재 유출 완화'를 위해서는 이공계로 진입했을 때 보장되는 심리적, 재정적 보상을 늘리는 확실한 대안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 최상위권 대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외국 박사후연구원(포닥) 과정을 거친 후 대기업의 반도체 부서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더라도 1년에 세후 1억 이상을 벌기가 어렵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의사는 2020년 기준으로 연평균 2억3천여만원을 버는 것으로 알려져 갭이 매우 크다.

아울러 자격증이 나오는 의약학계열과는 달리 끊임없이 기술을 공부해야 하고, 은퇴 후에 전공을 살린 재취업이 쉽지 않다는 점도 이공계 진학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대기업의 한 반도체 연구원은 "시스템상에 들어와서 일하다가 나갈 때가 되면 개인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며 "장치산업과 기간산업은 전공을 살려서 개인 사업을 하기 어렵다.

대부분 50대 초반에 은퇴하는데 노후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협회 전무는 "엔지니어들이 은퇴하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기술을 갖고 있다.

인재를 양성한다든지 국가가 필요한 행정부서에 가서 일을 한다든지 기회를 국가 차원에서 다양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 반도체학과의 교수는 "도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아직 부족하다"며 "계약학과가 늘어나는 것도 좋지만 학부 졸업생만큼 석·박사 인재를 키워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등 특정 이공계 분야 인재만 키우는 것이 아닌, 종합적인 관점에서 인재 육성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임 대표는 "지금은 이공계뿐만 아니라 문과 육성도 해야 한다.

균형을 맞춰야 졸업 후 취업이 선순환 되면서 사이클이 돌아갈텐데 지금은 중·고등학교 단계에서 문과의 씨를 말려놨다"며 "전반적인 불균형 문제를 국가가 전반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형식적인 정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과 교수도 "어느 곳에 인원이 쏠리고 어느 곳이 없다고 해서 단편적으로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고등교육 전반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며 "인력 수급 전망이나 방향을 전문가 자문과 논의체를 통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