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지폐교체 4개월 만에 대혼돈…대선 코앞 정치적 동기 의심도
나이지리아 현금 대란…ATM 마다 수일째 긴 줄, 주민 분통
나이지리아에서 새 지폐 교체 후 4개월 만에 현찰이 희귀해져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에 주민들이 수일째 앞다퉈 긴 줄을 서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중앙은행이 지난해 10월 새 지폐를 이달 10일까지 교체하라고 하면서 대부분 국민이 구권을 반납했지만 정작 신권을 구하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 상황이다.

은행 계좌에 돈이 있어도 인출을 못 해 식료품이나 약도 못 사는 지경이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어린 딸을 이웃에 맡긴 채 현찰을 구하러 나온 블레싱 아코(22)는 수도 아부자 도심에 있는 ATM 앞에서 종일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떠밀리며 긴 줄을 서느라 울상이 됐다.

은행 계좌에 돈이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정작 현금 인출을 못 해 식료품도 제대로 못 사고 집으로 돌아갈 버스비조차 없어서다.

유통되는 현찰이 부족하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주민들이 겪는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과일 파는 사람은 현금이 쪼들린 손님들에게 과일을 많이 못 팔다 보니 자녀들 학교 등록금조차 못 냈다.

그런가 하면 요리사는 식재료를 현찰로 충분히 사지 못해 평소의 절반 분량만 요리를 내놓고 있다.

우버 택시 기사는 사전에 손님에게 현찰이 있냐고 물어본 뒤 없으면 승차를 거부하고 있다.

교회에선 헌금을 현찰로 못 받게 되자 광고 시간에 은행 계좌로 헌금하라고 안내를 하고 있다.

현금이 없으면 카드 결제를 하면 되지만 카드로 지급을 하려면 '네트워크 문제'라면서 결제가 제대로 안 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그렇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에선 은행 ATM 대신 사람이 직접 결제해주고 현금을 내주는 이른바 '인간 ATM'도 있다.

인간 ATM은 거리에서 카드 머신을 들고 카드를 긁는 사람들에게 현찰을 내주는 대신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나 현찰 자체가 품귀 현상을 빚다 보니 수수료가 최근 30%까지 뛰었다.

나이지리아 현금 대란…ATM 마다 수일째 긴 줄, 주민 분통
고드윈 에메피엘레 중앙은행 총재는 현금 대란과 관련, 상업은행들이 ATM에 충분히 현찰을 쟁여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탓했다.

현찰 위기의 계기가 된 새 지폐 발행과 관련해 그는 계속 말을 바꾸고 있다.

처음에는 현찰 사재기 때문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위조지폐와 납치극 인질 몸값 제공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금 없는 사회를 만들고 21%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금 대란의 배경에는 다가오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현금 대란 속에 주민들의 원성이 집권당에 쏠리면서 집권 범진보의회당(APC) 의 볼라 티누부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티누부 후보는 앞서 당내 경선에 경쟁자로 나섰다가 패한 에메피엘레 중앙은행 총재가 자신에게 앙갚음하려고 일부러 이 같은 사태를 조장했다고 하나 에메피엘레 총재는 이를 부인했다.

지난주 무함마두 부하리 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현찰을 사재기해둔 후보들이 돈으로 표를 사려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 화폐개혁을 단행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재선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부하리 대통령은 일찍이 40년 전 쿠데타로 집권했을 때도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신권과 구권 화폐 교환 기간을 2주 이내로 준 적이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현금에 목마른 유권자들이 현찰을 주는 후보에게 더 쉽게 매수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금 부족 사태는 버스비를 못 낸 유권자가 투표장 이동에도 지장을 받을 만큼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번 대선은 25일 치러지며 지난 20년간 번갈아 집권한 기성 양당체제에서 처음으로 제3의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금 부족과 함께 연료 부족 사태도 심각하다.

주유소에는 차 안에서 밤을 새워서라도 기름을 사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서 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만성적 부실 경영으로 연료난을 겪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