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3번째 대책…소아 공공진료센터·응급의료센터 확대 수가 높이고 시설·장비 지원, 근무여건 개선…의사수 확대 구체계획 없어 "수가인상보단 비용보장 방식 필요…비수도권에 재원 더 투입해야" 예고된 위기에 손 놓은 정부…낮은 전공의 지원율이 의사부족으로 이어져
정부가 22일 내놓은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은 소아 의료의 붕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내용이 핵심이다.
정부는 이전에도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내놓으며 소아진료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부 대형병원에서 소아 입원진료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며 상황이 악화하자 추가 대책을 내놨다.
다만 이번 대책은 보상 강화라는 '당근'을 제시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로 꼽히는 의사 수 확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포함하지 않아 장기적인 효과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수가를 높이는 식의 단기처방 뿐 아니라 손실보상 같은 적극적인 대책이 더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지원 늘리고 손실 보상…중환자 입원료 인상 정부가 이날 내놓은 대책은 기존에 '필수의료'의 범주에 묶어 발표한 대책을 포함하면 윤석열 정부 들어 3번째 소아의료 관련 정책 발표다.
보건복지부는 소아의료 외에 중증·응급, 분만의료를 아우르는 필수의료와 관련해 작년 12월 8일과 지난달 31일 공공정책수가 도입, 의사 근무여건 개선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한 대책은 현재 10곳인 어린이공공전문진료센터를 올해 4곳 더 늘리고, 시설과 장비 예산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8곳인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4곳을 추가 설치하고, 소아암 지방 거점병원 5곳을 육성한다.
신규 지정 센터에는 초기 시설과 장비 도입을 지원하고 기존 센터에는 시설과 장비의 기능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다.
기존 대책에 따라 의료적인 손실은 사후에 보상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한다.
병의원급 신생아실의 입원 수가도 높인다.
현재 만 8세 미만 대상 30%인 소아입원료 연령 가산을 만 1세 미만에 대해서는 50%로 확대한다.
입원전담 전문의가 소아를 진료할 경우 소아 연령 가산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대책에는 소아중환자실 입원료를 인상하는 내용도 담겼다.
소아진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해 중환자실 필수 장비와 시설을 확충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야간·휴일에 외래진료를 하는 '달빛어린이병원'에 대한 수가도 높인다.
아울러 소아의 갑작스러운 증상에 대해 의료인이 24시간 전화상담을 하는 소아전문 상담센터 시범사업을 조속히 추진한다.
간단한 처치법과 운영 중인 의료기관을 소개하는 상담 서비스이지만, 필수의료의 위기 상황에서 일부 의료계와 시민사회에서 반대하는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려는 것이라는 비판도 예상된다.
한편, 복지부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긴 근무시간 등 근무여건도 개선하기로 했다.
◇ 올해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 25%…저출산에 비인기과 인력난 소아의료가 위기에 처한 것은 진료할 의사의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소아의료 수요 감소와 의사들의 인기 진료과 '쏠림' 현상이 원인으로 꼽힌다.
합계출산율은 지난 2012년 1.3명에서 2022년 0.78명까지 떨어지면서 소아 진료의 수요가 감소했다.
그러는 사이 비급여 시장이 활성화되는 상황에서 건강보험 급여 진료가 대부분인 소아청소년과 병원의 수익은 다른 진료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소아청소년과의 인기 하락은 전공의 지원율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집계한 2023년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는 총 53명으로 전체 정원 208명 중 25%에 불과하다.
작년 집계를 보면 전공의 지원율은 재활의학과 202.0%, 정형외과 186.9%, 피부과 184.1%, 성형외과 180.6% 등이어서 인기 진료과와 소아청소년과 사이의 격차가 크다.
이처럼 의사 수가 부족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부족하면서 소아를 둔 부모들은 병원이 문을 여는 시간을 맞춰 '오픈 런'을 하거나 원거리 진료를 다녀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중증 소아청소년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의 지역간 격차도 크다.
2019년 기준 소아 입원환자 거주지역 상급종합병원 치료 비율은 서울이 93.9%이지만 충북은 52.6%에 그쳤다.
소아의료 인력 부족 현상은 사실 최근 몇 년 사이의 문제는 아니다.
저출산 문제가 예측되는 가운데 소아청소년과의 낮은 인기가 전공의 배출을 줄였고 결국은 의사 부족 문제로 이어진 것이다.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오랜기간 지속적으로 전공의가 안들어오고 배출도 안되다보니 지금의 인력 부족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며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전부터 발생한 문제가 누적되면서 더 심각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을 찾아 "의사가 소아과를 기피하는 것은 의사가 아닌 정부 정책 잘못"이라며 "국가가 한눈파는 사이에 아이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소아 의료진에게 정말 면목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역시 소아과 의료인력 부족이 오래 누적되고 예고된 문제였음에도 그동안 과거 정부에서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대통령실과 복지부 관계자는 해석했다.
다만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나온 이번 대책이 소아과 기피 등을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비판적인 의견이 나온다.
◇ 수가인상 단기처방엔 '한계'…"인재육성 장기적 대안 필요" 정부의 이번 대책에는 의사 인력 확충과 관련해서 '추진한다'는 원론적인 내용만 담겼다.
복지부는 보도자료에서 의사 확충 문제와 관련해서는 "필수분야 의사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의료계와 협의해 의료인력 확충을 추진한다"고만 짧게 언급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정협의가 재개되는 대로 신속히 협의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증원 규모나 계획에 대해서는 정부안을 내놓지 않았다.
의료 현장에서는 출생아 자체가 적고 소아과 의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적은데 수가를 올리고 소아전문 진료센터를 늘린다고 해서 소아의료 공백 우려가 해소되겠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임준 교수는 "아이들이 줄면서 (의료) 행위 자체가 줄어든 것인데, 수가를 올려준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그나마 (수가를) 올려주는 것이 낫기는 하지만 자본비용과 인력 기준을 유지하며 발생하는 인건비 등 총비용을 정부가 보상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수도권은 의사 인력이 안 가려 하고 출생아 수도 더 적으니 이쪽에 훨씬 더 많은 재원 투입해야 하는데, 일률적인 수가 인상으로는 (비수도권 소아청소년과 의사 확충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는 "시도 혹은 권역 단위로 묶어서 해당 지역에 필요한 의사 인력을 양성하는 수련제도를 만드는 식으로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공공의료 방식이든 의대 증원 방식이든 지역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는 장기적인 대안도 같이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발표된 대책의 대부분이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활용하는 것이다.
자칫 다른 분야의 보장성이 약화될 우려가 있는 만큼 국고 투입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소아의료 등 필수의료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의료계를 중심으로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관련 부처는 필요한 어떤 재원도 아끼지 말고 지원하라"면서 "건강보험이 모자라면 정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바꾸라"고 지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