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목프로덕션  제공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목프로덕션 제공
국내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 달갑지 않은 소식이 하나 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을 만나는 게 갈수록 힘들어질 것 같다는 뉴스다. 그를 찾는 곳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작년 말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 이어 지난달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연 리사이틀이 워낙 호평받아서다. “위그모어홀에 퍼진 순수한 마법”(이브닝스탠더드 부편집장 노먼 레브레히트)이란 극찬이 나왔으니, 말 다했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6월 밴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한 뒤 하나둘 차기 시작한 그의 캘린더는 이제 빈 날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당장 임윤찬을 국내 무대에서 만나려면 오는 7월 루체른 심포니의 내한 공연에 협연자로 나올 때까지 5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임윤찬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녹음한 음반을 듣는 것이다. 석 달 전 나온 ‘베토벤·윤이상·바버’ 음반은 임윤찬이 밴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내놓은 유일한 앨범이다.

이 음반의 하이라이트는 임윤찬이 광주시립교향악단(예술감독 홍석원)과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다. 지난해 10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연주회 실황이다.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이자 나폴레옹 군대가 오스트리아 빈으로 진격해오는 전란 중에 작곡한 역작이다.

임윤찬은 1악장 시작부터 명료하면서도 강단 있는 타건으로 베토벤 특유의 강한 에너지를 온전히 살려냈다. 80여 명이 빚은 오케스트라 소리를 뚫고 나온 또렷한 음색과 어디 하나 튀지 않고 유려하게 흐르는 선율은 왜 임윤찬에게 ‘진짜배기(the real deal)’란 표현을 영국의 유력 신문 ‘더 타임스’가 선사했는지 알게 해준다. 강한 힘으로 웅장한 음색을 표현하다 일순간 부드러운 터치로 마음을 보듬는 그의 연주는 다채로운 매력을 선사했다.

후반부에서는 저음에서 고음으로 선율을 점차 쌓아가면서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폭발적인 표현력을 보여줬다. 억지로 힘을 주는 게 아니라 음악적 표현의 폭을 점차 키우면서 악상의 변화를 이끌었다. 느린 악곡의 2악장에선 섬세한 감정 표현이 돋보였다. 피아노 본연의 깨끗하고 순수한 음색이 귀를 즐겁게 했다. 마지막 악장은 임윤찬의 기교를 뽐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빨리 치면서도 중요한 음표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임윤찬이 ‘황제’를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는지, 피아노로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드러나는 연주였다.

임윤찬은 작년 11월 28일 앨범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 곡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베토벤이 꿈꾸는 유토피아와 베토벤이 바라본 우주를 담아낸 곡이라고 생각해요. 베토벤이 원했던 자유와 기쁨을 그대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앨범에 담긴 피아노 소리는 석 달 전 임윤찬이 했던 말 그대로였다. 임윤찬은 피아노 한 대로 베토벤의 찬란한 색채, 강렬한 선율, 장엄한 카리스마를 표현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