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83)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83)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클래식 역사에서는 불우한 환경,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오로지 실력 하나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인물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세계 최고 지휘자로 불리는 독일 출신의 크리스토프 에센바흐(83)도 그중 한 명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고아가 된 이후 실어증까지 앓던 그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명장으로 성장한 이야기는 ‘영화 같은 인생사’의 표본과도 같다. 50여 년간 지구촌 정상급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온 에센바흐가 한국 청중과 만난다. 그는 15일 열리는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KBS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춘다.

여든이 넘은 나이. 평생 제집 드나들 듯 수없이 오른 무대지만 그는 아직도 지휘봉을 잡을 때면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다고 했다. 에센바흐는 1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휘할 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체감한다”며 “오히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얻은 통찰력으로 음악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음악만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영원한 존재라고 믿어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음악의 신성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 남은 인생을 쓰고 싶습니다.”

에센바흐가 음악을 처음 만난 것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낳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 나치에 반기를 들어 그의 나이 네 살 때 전쟁에 끌려가 전사한 아버지에 이어 할머니까지 잃자 그는 실어증에 시달렸다. 이때 어머니의 사촌이자 양어머니가 권유한 것이 피아노였다. 그는 피아노를 치면서 차츰 말할 수 있었다. 그가 음악을 ‘구세주’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전쟁이 남긴 상처로 매우 고통스러울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표출할 창구가 절실했어요. 어린 시절 음악이 지닌 강렬한 치유의 힘이 저를 구원했죠.”

에센바흐는 뮌헨 국제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피아니스트로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그런 그가 지휘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전설적인 지휘자 조지 셀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만나면서부터다. “두 거장은 나의 음악적 재능과 지휘 역량을 발견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스승들이에요. 셀에게서 작품의 구성과 프레이징을 분석하는 법을, 카라얀에게서는 오케스트라의 색이 완연히 드러나도록 악단을 이끄는 법을 배울 수 있었죠. 저의 영원한 멘토예요.”

1972년 지휘자로 데뷔한 그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거쳐 휴스턴 심포니, 함부르크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파리 오케스트라, 워싱턴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 악단에서 음악감독을 지냈다. 에센바흐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유명한 ‘완벽주의자’다. 무대뿐 아니라 연습실에서도 최고의 소리를 내기 위해 단원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켜서다. 자신에게는 더욱 엄격하다.

“좋은 지휘를 위해선 음악의 구조, 형식, 템포 간의 관계, 색채 등 악보에 담긴 모든 요소를 아주 면밀하게 연구해야 해요. 마치 고전문학을 읽듯이 말이죠. 그 이후에 오케스트라와 악보에 담긴 모든 메시지를 현실로 끌어내는 데 모든 집중력을 쏟아내야 합니다.”

그의 삶에서 음악을 뺀 시간이 있을까. “음악을 떠올리지 않을 때는 주로 생각하는 것 자체에 집중해요. 직접 보고 느낀 것, 사람들에게 듣는 것, 세계가 알려주는 것 등을 머릿속에서 곱씹고 그에서 파생되는 것을 끊임없이 따라가는 편이에요. 취미나 특기라고 말할 만큼 활동적이지는 않죠. 이때 떠올리는 생각만큼은 음악과 관계가 없어요. 하하.”

그는 이번 공연에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무대에 올린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해 고찰한 작품이다. “‘부활’이란 부제에서 느낄 수 있듯 이 작품은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어요. 코로나19로 인류에 드리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말러 작품에 담긴 영감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