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 속에 확산하는 사회 통제…신간 '전체주의의 심리학'
전체주의에 대해 평생 연구한 한나 아렌트는 이오시프 스탈린이나 아돌프 히틀러 같은 현란한 수사의 지도자들을 평생 경계했다.

그들의 말에 경도된 일반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체주의에 빠져들었다.

'악'은 도처에 있었다.

평범한 이웃들 속에 있었다.

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악의 평범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21세기에 드러난 전체주의의 양상은 그것과 사뭇 다르다.

독재자의 화려한 수사도, 선동도 없다.

이번 세기에 전체주의를 이끄는 주역은 무미건조한 기술관료들이다.

그들은 전문적 지식을 토대로 대중들을 '통제'한다.

벨기에 겐트대 임상심리학과의 마티아스 데스멧 교수가 쓴 '전체주의의 심리학'(원더박스)은 기술관료들이 이끄는 전체주의의 확산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특히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역병의 시대를 맞아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정책을 통해 이들이 전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전체주의는 대중 형성(mass formation)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중들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집단의 연대를 위해 자신의 사적 이익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개인들의 과장된 태도, 다른 의견에 대한 비관용, 유사-과학적 세뇌와 선전에 대한 뚜렷한 취약성 등의 특징을 보인다.

기술관료들은 팬데믹이라는 위기를 맞아 적극적으로 대중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오웰의 돼지들처럼"(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하룻밤 사이에 눈에 띄지 않게 규칙을 바꾸기도 했다.

대중은 코로나 위기 속에 관료들의 말을 맹종했다.

안전이라는 명분에 따라 대중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희생했고,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통제는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대다수 사람은 이 같은 전체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현대판 전체주의의 이상은 기술관료와 전문가들이 그들의 기술지식을 바탕으로 사회라는 기계를 결함 없이 운영함으로써 유토피아 같은 인공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

그런 기술관료의 이상에는 계몽주의적 합리성이라는 유구한 전통이 자리한다.

저자는 기술 관리들이 강조하는 논리와 합리성만으로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면서 인간은 삶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불확실성은 인간의 조건이며 창의성, 개별성, 인간적인 연결성을 출현시키는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김미정 옮김. 312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