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모자라 어린이 구호 어려워…우크라이나 전쟁만큼 관심 필요"
"파키스탄 온실가스 배출 거의 안 했지만 지구온난화 대가 치러"
[인터뷰] 파키스탄 유니세프 소장 "대홍수 피해 전쟁보다 심각"
"파키스탄 대홍수로 숨진 약 1천700명 중 3분의 1이 어린이입니다.

전쟁 지역에서보다 더 많은 아이가 목숨을 잃은 겁니다.

이번 홍수는 몇 번의 전쟁을 치른 것과 같은 피해를 낳았어요.

"
2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만난 압둘라 파딜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파키스탄 사무소장은 "우크라이나의 전쟁만큼 파키스탄 홍수에도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파키스탄에선 신드주(州)를 중심으로 지난해 6∼9월 예년의 4배가 넘는 몬순 폭우가 내리면서 인구 7분의 1인 3천300만명이 수재민이 됐다.

주택은 물론이고 병원, 학교, 수도시설이 파괴돼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심각한 설사와 장염, 말라리아, 콜레라 등 수인성 질병까지 돌고 있다.

유니세프는 경제난을 이유로 구호활동에 사실상 손을 놓은 정부를 대신해 최전선에서 이재민을 돕고 있다.

물탱크·정화시설을 설치하고 의료 서비스와 교육 시설을 제공하는 등 수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주민들을 구호하는 데 안간힘을 쏟는 중이다.

문제는 자금난이다.

구호활동에 필요한 약 1억7천만 달러(약 2천111억원)의 절반 정도만이 모금돼 자금난에 허덕이는 형편이다.

파딜 소장은 "도움이 필요한 전체 어린이 가운데 3분의 1, 4분의 1 정도만 돕고 있다"며 "파키스탄 홍수와 피해 어린이에 대해 세상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안타까운 점"이라고 했다.

[인터뷰] 파키스탄 유니세프 소장 "대홍수 피해 전쟁보다 심각"
파키스탄은 대홍수 이전에도 경제 위기와 정치 불안정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2억4천만명이 모여 사는 인구 대국이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천600달러에 불과한 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다.

민족·종교 갈등이 심각해 테러도 자주 일어난다.

지난달 30일에도 페샤와르 모스크(이슬람사원)에서 난 자살폭탄 테러로 101명이 숨졌다.

파딜 소장은 "특히 홍수 피해가 심각한 신드주는 파키스탄에서도 가장 취약한 지역이었다"며 "주민들은 이번 홍수를 겪으며 자신이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홍수의 원인으로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가 지목된다.

남아시아에서는 매년 몬순 우기 때 피해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온난화로 대기에 수분이 많아지면서 더 많은 비를 내리게 했다는 게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파키스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의 1%도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선진국이 치러야 할 기후 파괴 대가를 파키스탄이 대신 치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딜 소장 역시 "이번 대홍수의 가장 큰 원인은 지구온난화이지만, 파키스탄은 지구온난화의 원인 제공을 거의 하지 않았다"며 "기후 위기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다른 나라들처럼 파키스탄이 (선진국을 대신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는 세계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며 "특히 선진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해 발전을 이룬 만큼 책임이 막중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파키스탄 유니세프 소장 "대홍수 피해 전쟁보다 심각"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파키스탄 홍수 피해 구호활동을 위해 약 7억원을 모아 본부에 전달했다.

우리 정부도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과 유니세프를 통해 총 200만 달러(약 24억원)를 지원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모금 규모는 세계 7위로 꼽힐 만큼 평상시에도 개발도상국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100원을 기부받으면 85원을 본부로 전달해 전 세계 33개 유니세프국가위원회 중 송금률이 가장 높기도 하다.

파딜 소장은 "한국은 유니세프의 훌륭한 파트너"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 유니세프가 개발도상국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등 교육에 방점을 찍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교육이 가난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걸 한국이 몸소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파키스탄 유니세프 소장 "대홍수 피해 전쟁보다 심각"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