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홍수 폐허 속 피어나는 파키스탄 아이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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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 임시교육센터서 배움 이어가…"뭐라도 배우고 싶어"
보건소엔 하루 1천명 발길…"도움 필요한 사람 많지만 자원 한정적"
"음…나중에 크면 꼭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요.
"
현지시간 지난달 31일 파키스탄 신드주(州)의 한 작은 마을에서 만난 열한 살 소녀 굴샤는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다 답하고는 수줍게 웃었다.
굴샤는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이 운영하는 마을 임시교육센터에서 수학을 배운다.
유니세프가 학교에 갈 형편이 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연 이곳 센터는 지난해 6∼9월 신드 일대를 덮친 대홍수 이후에도 학생을 받았다.
신드주에 있는 임시교육센터는 780곳 이상이다.
센터를 다니는 어린이는 7만명에 이른다.
이날도 막사 하나에 50여명의 어린이가 빼곡히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칠판과 책을 번갈아 보는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대부분은 센터가 생기기 전까지 학교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굴샤보다 두살 많은 친구 악사는 꿈이 뭐냐는 질문에 "꼭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인 센터 선생님을 향해 찡긋 웃어 보였다.
막사 밖 나무 아래에서는 영어 수업이 한창이었다.
아이들은 목이 터져라 'A, B, C, D'를 외치며 공책에 알파벳을 적어나갔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열일곱 살 소년 와지드는 휠체어를 탄 채 수업을 들었다.
눈빛에는 누구보다 총기와 열정이 넘쳤다.
가끔 가족이 등교를 도와주지만 대개는 혼자서 센터까지 온다.
"무언가라도 배우고 싶어서"라고 했다.
센터 교장 수메라(32)는 "배움에 대한 아이들의 갈증이 엄청나게 크다.
아이들은 무엇이라도 되고 싶어 한다"며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걸 사명이자 의무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유니세프 보건소가 있다.
하루 1천명이 넘는 환자가 보건소에서 치료나 상담을 받는다.
거동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이동형 치료소가 직접 환자를 찾아가기도 한다.
이날 보건소 안팎은 주변 마을에서 온 환자로 북적거렸다.
따가운 오후의 햇볕을 손으로 가린 사람들이 진료실 바깥까지 늘어서 순서를 기다렸다.
산부인과 근처도 문전성시였다.
산부인과 옆방에서는 만삭의 임신부들이 방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나오는 임신·출산 교육 영상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다 보니 아기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한 방에서 간호사가 아기 팔뚝을 잡아 줄자를 두르고 숫자를 확인했다.
팔 두께로 발육 상태를 파악해 그에 알맞은 영양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유니세프의 헌신적 노력에도 신드주에선 약 34만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
홍수로 집을 잃고 살던 마을을 떠난 사람들에게도 유니세프의 손길이 닿고 있었다.
다음날 찾은 신드주 또 다른 지역의 한 피난민촌에는 곳곳에 하얀 막사가 세워져 있었다.
유니세프가 운영하는 여성교육센터, 심리치료센터, 영양분 공급센터 등이었다.
유니세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호 활동은 식수 공급이다.
지역에서 오염된 물을 마시고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최근 잇따랐기 때문이다.
마을을 둘러보니 집마다 부엌에 5L들이 물통이 놓여 있었다.
유니세프가 지원하는 식수를 보관하는 용도다.
때마침 마을 어귀로 식수를 가득 채운 트럭 한 대가 들어서자 생명수를 만난 주민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홍수 이전에는 없던 화장실도 여러 개 생겼다.
화장실 옆에는 간이 세면대와 소형 물탱크가 함께 있었다.
유니세프가 수인성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손씻기 교육을 강화하면서 설치한 시설이다.
세면대를 찾은 한 남자아이는 배운 대로 비누 거품을 묻히고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손을 씻었다.
"홍수가 나고 나라에서도 우리를 보러 와주지 않았어요.
근데 지금은 보세요.
마실 물과 화장실, 물탱크까지 생겼잖아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중년 여성 파트마는 화장실을 가리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유니세프의 손길이 신드주의 모든 마을에 닿기란 불가능하다.
수해를 입은 이들이 파키스탄 전체에서 3천300만명이 넘는데 지원 자원은 너무나 한정적이어서다.
현지에서 만난 유니세프 직원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돈 문제 때문에 도와줄 수 없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아이들은 설사 때문에 죽어가고 학교는 무너졌어요.
겨울이 왔는데도 담요조차 없는 사람도 많고요.
구호 활동을 펼치고는 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아직 끝없이 많습니다.
"
/연합뉴스
보건소엔 하루 1천명 발길…"도움 필요한 사람 많지만 자원 한정적"
![[르포] 대홍수 폐허 속 피어나는 파키스탄 아이들의 꿈](https://img.hankyung.com/photo/202302/AKR20230203003900004_01_i_P4.jpg)
"
현지시간 지난달 31일 파키스탄 신드주(州)의 한 작은 마을에서 만난 열한 살 소녀 굴샤는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다 답하고는 수줍게 웃었다.
굴샤는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이 운영하는 마을 임시교육센터에서 수학을 배운다.
유니세프가 학교에 갈 형편이 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연 이곳 센터는 지난해 6∼9월 신드 일대를 덮친 대홍수 이후에도 학생을 받았다.
신드주에 있는 임시교육센터는 780곳 이상이다.
센터를 다니는 어린이는 7만명에 이른다.
이날도 막사 하나에 50여명의 어린이가 빼곡히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칠판과 책을 번갈아 보는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대부분은 센터가 생기기 전까지 학교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굴샤보다 두살 많은 친구 악사는 꿈이 뭐냐는 질문에 "꼭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인 센터 선생님을 향해 찡긋 웃어 보였다.
막사 밖 나무 아래에서는 영어 수업이 한창이었다.
아이들은 목이 터져라 'A, B, C, D'를 외치며 공책에 알파벳을 적어나갔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열일곱 살 소년 와지드는 휠체어를 탄 채 수업을 들었다.
눈빛에는 누구보다 총기와 열정이 넘쳤다.
가끔 가족이 등교를 도와주지만 대개는 혼자서 센터까지 온다.
"무언가라도 배우고 싶어서"라고 했다.
![[르포] 대홍수 폐허 속 피어나는 파키스탄 아이들의 꿈](https://img.hankyung.com/photo/202302/AKR20230203003900004_02_i_P4.jpg)
아이들은 무엇이라도 되고 싶어 한다"며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걸 사명이자 의무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유니세프 보건소가 있다.
하루 1천명이 넘는 환자가 보건소에서 치료나 상담을 받는다.
거동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이동형 치료소가 직접 환자를 찾아가기도 한다.
이날 보건소 안팎은 주변 마을에서 온 환자로 북적거렸다.
따가운 오후의 햇볕을 손으로 가린 사람들이 진료실 바깥까지 늘어서 순서를 기다렸다.
산부인과 근처도 문전성시였다.
산부인과 옆방에서는 만삭의 임신부들이 방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나오는 임신·출산 교육 영상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다 보니 아기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한 방에서 간호사가 아기 팔뚝을 잡아 줄자를 두르고 숫자를 확인했다.
팔 두께로 발육 상태를 파악해 그에 알맞은 영양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유니세프의 헌신적 노력에도 신드주에선 약 34만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
![[르포] 대홍수 폐허 속 피어나는 파키스탄 아이들의 꿈](https://img.hankyung.com/photo/202302/AKR20230203003900004_04_i_P4.jpg)
다음날 찾은 신드주 또 다른 지역의 한 피난민촌에는 곳곳에 하얀 막사가 세워져 있었다.
유니세프가 운영하는 여성교육센터, 심리치료센터, 영양분 공급센터 등이었다.
유니세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호 활동은 식수 공급이다.
지역에서 오염된 물을 마시고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최근 잇따랐기 때문이다.
마을을 둘러보니 집마다 부엌에 5L들이 물통이 놓여 있었다.
유니세프가 지원하는 식수를 보관하는 용도다.
때마침 마을 어귀로 식수를 가득 채운 트럭 한 대가 들어서자 생명수를 만난 주민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홍수 이전에는 없던 화장실도 여러 개 생겼다.
화장실 옆에는 간이 세면대와 소형 물탱크가 함께 있었다.
유니세프가 수인성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손씻기 교육을 강화하면서 설치한 시설이다.
세면대를 찾은 한 남자아이는 배운 대로 비누 거품을 묻히고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손을 씻었다.
"홍수가 나고 나라에서도 우리를 보러 와주지 않았어요.
근데 지금은 보세요.
마실 물과 화장실, 물탱크까지 생겼잖아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중년 여성 파트마는 화장실을 가리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르포] 대홍수 폐허 속 피어나는 파키스탄 아이들의 꿈](https://img.hankyung.com/photo/202302/AKR20230203003900004_05_i_P4.jpg)
수해를 입은 이들이 파키스탄 전체에서 3천300만명이 넘는데 지원 자원은 너무나 한정적이어서다.
현지에서 만난 유니세프 직원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돈 문제 때문에 도와줄 수 없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아이들은 설사 때문에 죽어가고 학교는 무너졌어요.
겨울이 왔는데도 담요조차 없는 사람도 많고요.
구호 활동을 펼치고는 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아직 끝없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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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