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도로공사·전신주 공사 회사 모두 업무상 과실 인정"
미개통 도로에 쌓인 전신주 충격 사망사고 '누구 잘못일까'
국도 확장공사 중 미개통한 구간을 야간에 전조등을 켜지 않은 채 진입한 승용차 운전자가 전신주 신설·철거공사로 인해 미개통 도로에 쌓여 있던 전신주를 들이받아 숨졌다면 누구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도로 확장공사를 맡은 회사와 전신주 이설 공사를 맡은 회사 모두 운전자의 잘못을 주장하며, 과실이 있더라도 서로의 탓이라는 주장을 폈으나 법원은 두 회사 모두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놨다.

춘천지법 형사1부(김청미 부장판사)는 도로 확장공사를 맡은 회사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 겸 현장소장 A씨와 책임감리원인 B씨에게 원심과 같은 벌금 각 700만원을 선고했다고 5일 밝혔다.

도로공사로 말미암아 도로 옆에 설치된 전신주 이설 공사를 맡은 회사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 C씨와 책임감리원 D씨에게도 원심과 마찬가지로 각 5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이들은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로 2017년 6월 27일 저녁 평창군 6번 국도 미개통 도로에서 승용차를 몰던 E씨가 도로에 쌓인 전신주를 들이받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도로 확장공사 중 차선 도색이 마무리되지 않아 '미개통 도로'가 생겼고, 공사를 맡은 회사 측은 개통 도로와 미개통 도로를 구분하기 위해 미개통 도로에 약 10m 간격으로 형광 드럼을 설치했다.

해당 공사로 인해 농기계 등이 다니던 기존 농로를 쓸 수 없게 된 마을주민들은 미개통 도로를 이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회사 측은 2016년 말부터 도로 일부에 진출입로를 마련해 주민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던 중 2017년 6월 초 전신주 이설 공사가 진행됐고, 사고가 발생하기 8일 전 공사 이후 남은 길이 16m의 전신주 6개를 미개통 도로에 그대로 쌓아뒀다가 교통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미개통 도로에 쌓인 전신주 충격 사망사고 '누구 잘못일까'
약 4년 만인 2021년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은 모두 무죄를 주장했으나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영월지원은 모두에게 업무상 과실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안전조치 의무는 일차적으로 도로공사 시공과 감리를 담당한 측에서 부담하지만, 이차적으로는 전신주 이설공사 시공과 감리를 담당한 측에서도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도로공사 측에는 적어도 야간에 미개통 도로 출입을 통제하고, 통행을 방해할만한 시설물이나 적재물이 있는지 점검해 이를 제거하고, 전신주 인근 출입을 막거나 안전 시설물 등을 설치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전신주 이설공사 측에도 미개통 도로 외에 전신주를 쌓아둘 공간을 마련하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도로에 둘 때는 안전 시설물을 설치해야 함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피고인들 과실 외에 피해자 잘못도 크다고 보이는 사정을 들어 벌금형을 내렸다.

사건을 다시 살핀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판결에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으며, 원심판결 이후 형을 변경할 정도로 특별한 사정변경이 없다"며 검찰과 피고인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