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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집중탐구

작년 4분기 ‘어닝 쇼크’에도 주가 급등
코로나發 수주 공백-인플레 잇는 악재 없을까
수주도 주가에 큰 영향…해양플랜트 발주 기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야경. /삼성중공업 제공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야경. /삼성중공업 제공
삼성전자가 시작한 ‘어닝 쇼크(기대 이하의 실적 발표)’가 주가 급등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삼성중공업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주식 시장 참여자들이 부진했던 작년 실적보다 향후 턴어라운드 가능성에 주목한 거죠.

이런 모습은 삼성전자와 삼성중공업에서만 나타난 게 아닙니다. 앞서 한경 마켓PRO는 <실적과 무관한 주가?…실적 컨센서스 하향폭 큰 종목들 주가가 더 올라>를 통해 작년 4분기 실적시즌에 접어든 뒤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하향된 종목들의 주가가 상향된 종목들보다 더 올랐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현재 주식 시장 참여자들이 악재는 무시하고 호재만 확대 재생산해 주가가 과도하게 오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작년까지 8년 동안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삼성중공업의 올해 흑자 전환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올릴 만했는지 따져보겠습니다.
[마켓PRO] 올해 '흑자전환' 기대된다는 삼성중공업…이번엔 진짜일까

“사실상 ‘어닝쇼크’ 아니고, 올해는 흑자전환” 평가에 급등

지난 3일 삼성중공업은 5840원에 마감됐습니다.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 직후인 지난달 31일 10.50% 급등한 뒤 기술적인 조정도 받지 않았죠. 연초 반등장이 나타나기 직전인 지난달 5일의 4935원과 비교하면 한달여만에 20% 가깝게 치솟았습니다.

실적 발표 직후에 주가가 급등했으니, 배경은 실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발표된 작년 4분기 실적은 영업이익이 3358억원 적자로, 실적발표 직전인 지난달 29일 집계된 컨센서스 905억원 적자에 한참 못 미치는 ‘어닝 쇼크’였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증권사의 조선업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대체로 ‘사실상 컨센서스와 비슷했다’고 평가합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중공업 4분기 어닝쇼크에는 외주단가 상승 및 임금 인상 등 인건비 상승 예상분 2700억원을 비용으로 반영한 점이 크게 영향을 미쳤고, (인도 동부 뱅골만 유전에 설치된)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 시운전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 수리비 200억원 등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며 “각종 일회성 비용을 제외한 수정 영업이익은 808억원 적자로 컨센서스와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영업 실적은 시장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지만, 수주 실적은 작년 초에 제시한 목표치 88억달러를 7%가량 웃돈 94억원이었습니다. 특히 수주가 예상됐던 해양플랜트의 계약이 지연돼 작년 실적에 포함되지 않았는데도 선박 수주만으로 공백을 모두 메꿨죠.

작년 실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미 계약은 맺어진 상태입니다. 삼성중공업은 작년 12월21일 아시아지역 선주로부터 1조9611억원 규모의 해양생선설비 1기를 수주했다고 같은달 22일 공시한 바 있습니다. 이 해양플랜트는 말레이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나스가 해저 가스전에서 연간 200만톤(t)의 천연가스를 생산하기 위해 발주했습니다. 계약 기간이 올해 1월2일부터라 올해 수주 실적에 반영됩니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해양플랜트. /사진=한경DB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해양플랜트. /사진=한경DB
올해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2조원 가량의 해양플랜트 수주 실적을 쌓은 삼성중공업은 ‘수주 목표 95억원, 매출 8조원, 영업이익 2000억원’이라는 공격적인 가이던스(자체 전망치)를 제시합니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작년 4분기 실적을 설명하는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1분기부터 흑자전환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8년간 이어진 적자 행진의 종지부를 선언하면서 주식 시장이 환호한 겁니다.

“이유 없는 무덤 없어” 새로운 악재 안 나올까?

‘흑자 전환 가능성’이 주가를 끌어 올릴 만했는지는 조금 뒤에 따져보겠습니다. 우선은 작년 4분기 실적에 대해 ‘사실상 어닝 쇼크가 아니다’고 평가하는 증권가의 모습이 낮설지 않다는 점부터 짚어보겠습니다. 2021년부터 실적 발표 때마다 비슷한 모습이 반복됐거든요.

조선사들의 주가는 2021년 5월께 고점을 찍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터진 2020년 한 해 동안 수주 활동이 멈추다시피 했지만, 그해 연말부터 밀렸던 선박 주문이 쏟아졌거든요.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으로 물동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 해운사들이 선박 발주도 멈추는 한편 노후 선박을 폐선해 해상 운송 서비스의 공급을 줄였는데, 정작 물동량이 줄지 않으면서 선박이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선박 수주 소식이 전해지니 주식 시장에서는 조선사들의 동반 적자 행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조선사들은 2020년 4분기부터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거든요. 조선업계 맏형이라는 한국조선해양(HD그룹의 조선지주회사)만 2021년 1분기와 3분기, 올해 3분기에 흑자를 기록했을 뿐,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작년 3분기까지 매분기 적자였습니다.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고 하잖아요. 2020년 4분기부터 작년 3분기까지 8개 분기동안 영업 적자가 발표될 때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2021년 상반기까지는 2020년의 ‘수주 공백’이 이유였습니다. 조선사들은 선박을 수주하면 최소 수개월에서 최장 2년에 걸친 선박 설계작업을 거친 뒤 작업장에서 실제 작업을 할 때부터 매출은 인식하는데, 약 1년간의 수주 공백으로 일을 못 한 거죠. 매출로 인식할 일감은 부족해졌지만, 고정비는 그대로 내야 하잖아요. 그럼 적자가 날 수밖에 없었죠.

설계 작업이 일찍 끝난 물량의 건조가 시작된 뒤인 2021년 하반기부터는 ‘인플레이션’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선박 건조 원가의 20%가량을 차지하는 철강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조선사들은 대규모 충당금을 쌓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특히 일부 조선사는 수주해둔 물량 전부에 대해 충당금을 쌓았다며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 규모를 정당화하기도 했죠.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2022년에 들어서면서 등장한 변명은 ‘저가 수주’였습니다. 수주 공백 직후부터 한동안은 조선사들이 일감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선박을 수주했고, 선가가 오른 뒤에 수주한 물량의 건조가 시작되면 실적이 개선된다는 겁니다. 이 논리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특히 올해부터는 고부가 선종으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가 본격화됩니다.

이제 수주 공백으로 인한 후유증이 지나갔고 급등했던 철강재 가격이 안정되면서 미리 쌓아뒀던 충당금이 환입되기도 하니, 이제는 정말로 실적이 개선될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또 다시 악재가 튀어 나오지 않는다면요.

해양플랜트 발주 재개 힘입어 ‘나홀로’ 수주 목표치 상향

또 다시 조선사들의 실적을 짓누를 돌발 악재가 뭘지 당장은 떠오르지 않으니, 일단 올해부터는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 맞다고 가정해보죠. 하지만 주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조선사들 주가는 수주라는 이벤트에 큰 영향을 받거든요.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인한 증시 폭락 이후 회복 국면에서 코스피지수는 꾸준히 상승했지만, 조선사들은 삼성중공업을 제외하고 흑자를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부침을 겪었잖아요.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주가가 상승탄력을 받은 건 선발 발주가 재개된 이후부터입니다. 앞서 ‘흑자 전환 가능성이 주가를 올릴 만했는지 따져 보자’고 했던 이유입니다.

다행히 삼성중공업은 올해 수주 목표를 작년보다 소폭이나마 높여 잡았습니다. 이미 수주한 패트로나스의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 설비(FLNG)를 비롯한 해양플랜트 수주 목표가 더해진 결과입니다. 선박만 따지면 삼성중공업을 비롯해 국내 조선 빅3 모두 30% 가량 수주 목표치를 낮췄죠.

조선업종 투자를 오래 해오신 분들은 ‘해양플랜트’라는 단어에 멈칫할 수 있습니다. 2015~2016년 조선업 위기를 만든 단초였으니까요.

여기에도 이유는 있었습니다. 해당 물량을 수주할 당시 국내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 건조 경험이 부족한 데다, 국내 기업들끼리의 경쟁이 격해지면서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며 일감을 확보한 게, 2016년의 국제유가 급락과 맞물린 결과였으니까요.

경험 부족으로 인한 약점은 극복됐다는 게 조선업계의 자체적인 평가입니다. 여기에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향후 문제가 될 법한 계약조건을 걸러낼 만한 역량을 비싼 수업료를 치르면서 쌓았을 겁니다. 또 조선업 위기가 지나간 뒤 삼성중공업은 당시 해저유전 개발의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진 배럴당 60달러선보다 낮은 수준에서도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술적인 노하우를 쌓았다고도 밝힌 바 있고요.

남은 문제는 에너지 가격입니다. 지금 당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몇 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삼성중공업이 작년말에 수주한 패트로나스의 FLNG의 계약기간은 2027년8월17일까지입니다.

📂삼성중공업 프로필(2월3일 종가 기준)
현재주가:
5840원
PER(12개월 포워드): 34.51배
적정주가: 7327원
2023년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 1607억원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