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방문에 "빈말하러 왔나" "약속 지켜진 것 없다" 부글부글
악시오스 "블링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 美 안보구상 강요"
"말로만 두국가해법…이스라엘 편" 美국무에 팔레스타인 냉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가 다시 살얼음판으로 치달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긴장 완화를 중재하려 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의 여론은 싸늘하다고 미 CNN 방송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작년 12월 이스라엘에 유대 민족주의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강한 극우 연정이 출범한 이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수년 만에 가장 격렬한 수위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자 일각에서는 제3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민중 봉기) 가능성까지 우려하는 상황이다.

제1차 인티파다는 1987년, 제2차 인티파다는 2000년에 각각 시작돼 이 지역을 피로 물들였다.

이런 시점에 중동 순방에 나선 블링컨 장관은 지난 31일 벤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과 차례로 면담하고 긴장 완화를 위해 양측이 긴급 조처를 취할 것을 강하게 주문했다.

특히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별도의 국가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른바 '두 국가 해법'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확장 등을 두 국가 해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으며 비판하기도 했다.

"말로만 두국가해법…이스라엘 편" 美국무에 팔레스타인 냉담
하지만, 블링컨 장관의 이런 행보에 팔레스타인인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라고 CNN은 전했다.

팔레스타인 중심 도시인 라말라에서 커피 노점을 운영하는 아부 아셈(40)은 "많은 지도자들이 여기에 왔다 갔지만 상황은 똑같다"며 "그(블링컨)의 방문은 오직 이스라엘에만 맞춰진 것이다.

옆에 있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에는 예의상 들른 것"이라고 CNN에 말했다.

아셈은 "그가 여기저기에서 무엇인가를 제안할 터이지만 이것 모두가 '공허한 약속'일 뿐"이라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점령 첫날부터 똑같은 약속이 이뤄졌지만 이 약속들은 지켜진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인근에서 견과류를 볶아 파는 리파트 유서프(44)도 비관적이긴 마찬가지다.

그는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나쁨'에서 '더 나쁨'으로 향했다"며 블링컨 장관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인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을 가능하게 하고 있으며, 점령지에서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행동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말로만 두국가해법…이스라엘 편" 美국무에 팔레스타인 냉담
그러면서 "우리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그 누구의 방문에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팔레스타인인들 상당수는 미국이 표면적으로는 '두 국가 해법'을 강조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 방침에 제동을 가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팔레스타인의 점령을 방조하고 있다며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느끼는 무력감은 더 크다고 CNN은 조명했다.

니하드 오마르(18)는 "우리는 매우 화가 나 있다.

누군가가 순교자 또는 죄수가 되는 것을 매일 목도한다.

똑같은 흐름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감당하기에는 압박이 너무나 크다"며 "(이스라엘 정착촌은)우리를 모든 방향에서 에워싸고 있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숨 쉴 공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분노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최근 양측 갈등이 고조되면서 이스라엘인들을 겨냥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총격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자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견과류 상인인 유서프는 "우리는 (미국이 강조하는)'두 국가 해법'을 희망하지만 정작 현실 속에서는 이 해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가 아무 것도 없다"며 "'두 국가 해법'은 단지 말에만 그치고 있으며, 비현실적인 꿈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마르 역시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는 한 '두 국가 해법'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신을 드러냈다.

'두 국가 해법'을 기반으로 미국이 중재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 회담은 2014년 이후 근 10년째 중단된 상태다.

"말로만 두국가해법…이스라엘 편" 美국무에 팔레스타인 냉담
한편,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블링컨 장관이 31일 아바스 수반을 만났을 때 제닌과 나블루스 등 두 요르단강 서안 도시에 대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제권을 재확립하는 데 초점을 맞춘 미국의 안보 구상을 수용·이행할 것을 압박했다고 보도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미국 측 구상은 팔레스타인 특수 병력을 훈련해 최근 치안이 부쩍 악화한 이 지역에 배치, 이스라엘에 대한 폭력과 저항을 이끌고 있는 민병대를 단속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런 구상이 팔레스타인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을 우려하며 난색을 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블링컨 장관은 또한 이번 만남에서 아바스 수반에게 이스라엘과의 치안 협력을 재개할 것도 촉구했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최근 이스라엘군이 요르단강 서안 수색 중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등 9명을 사살하자 이스라엘과의 치안 협력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