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싣고 와도 경매까지는 3일 대기…타지역으로 빠져나가기도
1개 선단만 이탈해도 78억원 직접 타격, 후방산업은 더 큰 영향

※ 부산공동어시장은 전국 최대 규모 수산물 산지 시장입니다.

근해 수산물의 30%가 이곳에서 처음 유통되고, 고등어의 경우 80%가 거쳐 가는 곳입니다.

부산 수산업의 '메카'이면서, 유통·가공업 등 후방산업을 이끄는 부산 수산업의 최전방 산업으로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1963년 부산종합어시장으로 개장했고, 1973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꿔 현 건물인 남항으로 이전해 자리를 잡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시설은 노후화했고, 60년 전 비위생적인 경매 환경은 개선 없이 이어져 오며 최근에는 경쟁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입니다.

재개발 사업인 현대화 사업은 2016년 국비를 확보하고도 지난 8년간 첫 삽조차 뜨지 못하면서 업계를 지탱해온 대형선망 등 선사 일부가 다른 도시로 이탈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부산공동어시장 위판 시스템의 실태와 지지부진한 현대화 사업을 둘러싼 우려 등을 5편에 걸쳐 보도합니다.

[흔들리는 부산 수산 메카] ③ "물량 처리 안 돼" 떠나는 어선들
"물량이 처리가 안 되니 대체 위판장을 계속 찾고 있는 것이죠. 저희도 거래선을 유지해야 하니 어쩔 수 없어요.

"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위판되는 고등어의 대부분을 공급하는 대형선망 소속 선단의 한 관계자는 30일 "최근 몇 년 사이 부산공동어시장의 위판(경매) 처리량이 감소해 어쩔 수 없이 대체 위판장을 찾고 있다"며 속사정을 털어놨다.

몇 년 전만 해도 부산공동어시장에서는 2천t 이상의 수산물을 하루 만에 경매에 올릴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제주 인근 해역에서 고등어를 잡아 올린 어선들은 고민 없이 부산공동어시장으로 향했고 어획 물량을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제주 남단에서 출발할 경우 최대 14시간, 북단에서 조업해도 10시간 이상 항해를 해야 부산에 도착하지만, 부산공동어시장에 포진해있는 중도매업계로 인해 고등어를 제값에 대량으로 넘길 수 있는 곳은 부산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한 선사 관계자는 "중도매인 간 경쟁이 있어야 어가가 제대로 형성되기 때문에 좋은 고기일수록 부산으로 들고 와야 한다"면서 "중도매업계가 형성돼 있지 않은 위판장은 어가를 제대로 받지 못해 부산공동어시장 시세보다 싸게 물건을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 어선들이 부산으로 와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고등어를 풀어 놓으려고 해도 이를 분류해 경매에 올릴 어시장 작업자들이 없어서 물건을 풀지 못하고 대기하는 체선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한때 하룻밤에 1천200명까지 동원할 수 있던 작업자들이 현재 500명대로 감소하면서 하루 처리 물량이 6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부산공동어시장 관계자는 "한때 18㎏짜리 상자 기준으로 10만 상자 넘게 하루 만에 처리했는데 지금은 6만∼7만 상자가 한계"라고 전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자동선별기 등 자동화 기능도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아, 오로지 사람 손에만 분류 작업을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대형선망 관계자는 "최근에 사흘까지 배에서 물고기를 내리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면서 "어선에 얼음을 대량으로 부어서 냉장 상태에 가깝게 보관했지만, 등푸른생선인 고등어는 신선도가 빨리 떨어지기 때문에 체선이 발생하면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그 손해는 선사들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흔들리는 부산 수산 메카] ③ "물량 처리 안 돼" 떠나는 어선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대형선망 소속 선단들은 전국의 다른 위판장을 이용하면서 부산공동어시장 물량이 일부 빠져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 한림, 경남 남해·완도·삼천포·통영 등 5∼6곳의 위판장을 대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선망 관계자는 "물고기 값은 덜 받지만, 배를 일단 비워야 다시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체선이 되는 공동어시장보다는 성어기에 배를 빨리 비울 수 있는 대체 위판장을 찾는다"면서 "유가 상승으로 조업지에서 가까운 다른 위판장을 이용하면 비용을 아끼는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이런 대형선망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을 약속하며 대대적인 유치작전에 나선 지자체도 나왔다.

전남 장흥군은 136억원의 위판시설 투자와 콜드체인 물류 시스템 구축 등을 약속하며 대형선망과 업무협약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장흥군 기초의원들도 잇따라 선망 업계를 방문하며 눈도장을 찍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 수산업계는 이런 상황을 우려스럽게 바라본다.

수협중앙회 수협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부산공동어시장은 직접 생산 유발액 4천580억원, 유통·가공 선박수리, 기자재 등 부산의 후방산업에까지 미치는 영향까지 포함하면 연간 최대 1조원의 산업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형선망 소속 18개 선단 중 1개 선단만 빠져나가도 공동어시장 매출액은 평균 78억가량 감소한다는 분석도 있다.

최전방 산업인 부산공동어시장의 경매량이 위축되면 전체 후방 산업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 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

[흔들리는 부산 수산 메카] ③ "물량 처리 안 돼" 떠나는 어선들
박극제 부산공동어시장 대표는 "고등어 배들이 다른 위판장에서 물량을 풀다 보면 결국 그곳에도 중도매인들을 비롯한 유통망이 갖춰질 수 있고, 관련 산업 생태계가 넘어가게 돼 부산 수산업 경쟁력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면서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을 신속히 진행해 부산 수산업 경쟁력을 다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부산시 일각에서는 수산업계 우려가 과장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부산시 한 관계자는 "대형선망이 부산공동어시장 지분을 가지고 있는 주주여서 어시장 발전을 스스로 저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전남 장흥군 등에서 하는 100억원대 시설 투자로는 대형선망의 일부 물량을 수용하는 데도 한계가 뚜렷하다"면서 "부산과는 경쟁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이에 박 대표는 "물류 생태계는 없다가도 일단 갖춰지면 향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지 있는데, 부산수산 정책을 총괄하는 부산시 관계자가 현장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을 하고 있다"면서 "전조증상의 심각성도 모르다가 일 터지면 책임소재나 따지는 행정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