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에너지 전환' 빠를수록 좋다
지난해 한국의 무역수지는 14년 만에 첫 적자였고 그 규모도 역대 최대인 472억달러에 달했다. 정부는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 수입액이 1908억달러로 전년 대비 784억달러나 더 지급한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올해 첫 20일간의 무역통계를 보면 벌써 1월 역대 최대 적자가 우려된다. 에너지 자원, 특히 원유 가격 추이는 어떠할까.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올해 세계의 원유 수요가 사상 최대인 하루평균 1억170만~1억18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 유럽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하반기에 종료되면 선진국의 경기 침체가 진정될 테고,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과 시진핑 3기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반면 공급 변수에는 이란 핵 합의 복원, 우크라이나전쟁 종식, OPEC의 증산 결정, 미국 셰일기업의 투자 확대 등 막연한 가정들뿐이어서 이대로라면 초과 수요로 인한 고유가가 불가피하다. 2008년 배럴당 136달러까지 갔던 브렌트유 기준 유가는 2015년과 2020년 대폭락과 OPEC+의 감산 합의가 반복된 끝에 지난해 120달러 천장을 다시 뚫고 연말 76달러대로 내려갔다가 최근 86달러대로 올라왔다.

신냉전시대 유가는 복잡한 지정학적 세력 구도의 영향을 받고 있다. OPEC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11개 비회원국 대표 격인 러시아는 OPEC+ 체제를 통해 원유를 무기 삼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이해를 도모하고 있는 반면, 미국을 세계 3대 산유국에 올려놓은 셰일회사들은 6개월 내 채굴이 가능한 이른바 쇼트 사이클 업종이어서 투자 결정을 미루고만 있다. 2014년과 2020년 두 차례나 대량 파산을 겪은 데다, 인건비 및 장비가격 상승세와 바이든 행정부의 탈화석연료 정책 때문에 신유정 개발 손익분기점이 WTI 기준 배럴당 50달러대로 떨어져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수입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이 같은 산유국들의 파워게임은 불안의 연속일 뿐이다. 한국은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 따른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중동 산유국들도 석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산업 다변화를 시도 중이고, BP를 비롯한 글로벌 석유기업들은 종합에너지 회사로의 변신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석유 수요 정점을 2030년 전후로 보는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즉 2050으로 가는 길은 세계 원유 수급 균형이 수시로 무너지면서 유가 급등락이 빈번할 것이 뻔하다.

1973년 중동전쟁 당시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 등 서방국가에 대해 석유 금수를 발표했을 때 서방국가들은 석탄, 원자력, 재생에너지 등 대체에너지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연구개발 비용이 막대해 이들은 원유의 이용 효율을 높이는 기술 개발 쪽으로 선회해야 했다. 이에 비해 오늘날 한국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산업에서 이미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14년 만의 무역적자 경고장을 받아 든 한국이 내릴 답은 정해져 있다. 기술혁신으로 에너지 전환을 앞당기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산업구조상 원유 수요는 향후 30여 년간 유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대외적으로 원유 공급원 유지, 수송로 안전, 가격 안정을 기하는 데 외교적 노력을 다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에너지 전환을 에너지 자립의 계기로 삼겠다는 각오로 태양광, 풍력, 수소, 배터리, 원전 등 대체에너지 기술개발 지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