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거대 인공지능(AI) 서비스 시장의 혈투가 시작됐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처럼 미국 빅테크 회사들만이 아니다. 언어권이 구분되어 있는 한국어 이용자들에게는 한국어 데이터를 많이 보유한 국내 기업이 더 유리한 부분이 존재한다. 통신사들과 플랫폼 사업자 등 데이터를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도 잇달아 이 분야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SK텔레콤은 24일 자사의 AI 서비스 ‘에이닷(A.)’에 오래된 정보를 기억해 대화에 활용할 수 있는 ‘장기기억’ 기술과 사진·텍스트 등 복합적인 정보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멀티모달(multi-modal) 서비스를 장착해 서비스 수준을 한층 높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에이닷은 작년 5월 SK텔레콤이 미국 오픈AI의 초거대 언어모델 ‘GPT-3’의 한국어 버전을 도입해 시작한 서비스다. 2017년부터 누구(NUGU), 설치를 할 필요 없는 에이닷 게임(A. game), 추천 채널을 제공하는 에이닷 TV(A. tv)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초거대 AI 혈투 막이 올랐다 [이상은의 IT 산책]
SK텔레콤은 “기존 초거대 AI는 주로 ‘언어’에 초점을 맞춘 반면, 에이닷과 같은 멀티모달 AI는 텍스트 외에 음성, 이미지, 몸짓, 생체신호 등 여러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받아들여서 사람처럼 추론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을 보면서 AI와 사람처럼 대화하고, AI가 상대방이 오래 전에 말해 준 MBTI를 기억해서 ‘INTJ형이라고 하더니 의외네요’ 라며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AI 모델이 목표인 셈이다.

경쟁사 KT도 최근 챗GPT(GPT-3의 후속 모델) 수준의 학습능력을 갖춘 한국형 초거대 AI 서비스 ‘믿음’을 상반기 중 상용화할 계획이다. KT는 특히 기존 챗봇을 훨씬 우월한 모델로 대체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고 있다. KT가 참여하는 AI 반도체 컨소시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기요금 등 비용을 장기적으로 절감하고, 금융사에서 흔히 사용되는 챗봇을 대체하거나 필요할 때마다 구독해서 쓰는 방식으로 과금해서 수익 기반을 갖춰가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네이버는 방대한 양의 한국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오랫동안 음성인식 등 한국어에 특화된 AI ‘하이퍼클로바’를 다듬어 왔다. 하이퍼클로바는 딥러닝 기술을 적용한 음성인식 서비스 ‘클로바노트’와 혼자 사는 노년층을 위한 ‘클로바 케어콜’ 등을 내놓았다. 네이버 관계자는 “클로바 케어콜에도 과거 대화에 대한 ‘기억하기’ 기능이 도입되어 있다”며 “지난 번에 허리 아픈 데는 어떠셨는지 물어보는 식으로 노년층의 돌봄 서비스에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LG와 카카오 등은 헬스케어 분야에서 초거대 AI의 활로를 찾고 있다. LG AI연구원이 개발하고 있는 초거대 AI ‘엑사원’은 신약개발 물질을 찾아내는 데 활용되고 있다. 보다 빠르게 암을 치료할 수 있는 후보물질을 예측하는 식이다.

카카오는 ‘카카오브레인’ 조직을 앞세워 의료영상 분석에 초거대 AI를 활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고려대 안암병원, 충북대병원 등 9곳과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