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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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올해 들어 '비둘기 본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통화정책에서 '비둘기파'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반대로 '매파'는 물가 안정을 위해 긴축을 선호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총재는 지난 18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기자간담회에서 비둘기파적인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그는 "지금 이미 금리가 높은 수준에 있다"라거나 "최종금리를 연 3.75%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을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이 총재가 '비둘기'인지 '매'인지 중요한 것은 향후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데 그가 캐스팅보트(최종 결정권)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 총재는 지난 13일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금통위에서 최종금리 수준을 연 3.5%로 보는 3명과 연 3.75%의 가능성을 열어둔 3명으로 의견이 나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만약 향후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금통위 내에서 3대3으로 쪼개질 경우 금통위 의장인 이 총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금리 수준이 달라집니다.

이 총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물가가 5% 이상 높은 수준이 유지된다면 금리를 중립금리 상단까지 올리면서 물가 오름세를 꺾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라거나 "한은이 미국 중앙은행(Fed)보다 먼저 금리 인상을 종료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매파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총재가 정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로 제시했는데 다음 달 이를 하향 수정할 예정입니다.

최근 집값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부동산 경착륙 역시 통화정책의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이 총재는 "한국의 금융시스템에 단기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부동산 관련 부문에서 어려움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부동산 연착륙할 것인지가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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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지난해 4월 공식 취임하기 전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매인지, 비둘기인지' 묻는 질문에 "저는 데이터가 변하는 것에 따라 어떤 때는 매파, 어떤 때는 비둘기파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요. 그의 '변신'에는 근거가 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물가 둔화 속도는 더딘 가운데 경기가 얼어붙을 경우 이 총재를 필두로 한 한은의 '피벗(정책 전환)'에 논란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 총재도 이런 고민을 내비쳤습니다. 그는 "향후 통화정책 운영 및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이러한 차이점(주요국보다 더딘 물가 하락)에 유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금융안정과 관련한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는 물가에 중점을 두면서도, 경기 및 금융안정과의 트레이드오프(trade-off·상충 관계)도 면밀하게 고려해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한은은 이러한 정책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앞으로 통화정책을 보다 정교하게 운용해 나갈 것이며, 시장과의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도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