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민주노총은 이제야 임자 만났다
엘리아 카잔 감독, 말런 브랜도 주연의 ‘워터프론트’가 개봉한 1956년은 미국 노동운동 전성기다. 미국 항만 노조가 부두 노동자의 하역 작업 배분권을 쥐고 있던 시절이다. 극 중 자니 프렌들리라는 노조위원장은 자신의 이름을 딴 술집을 아지트 삼아 심복들을 거느리고 노조에 반기를 들거나 경찰에 협조하는 조합원을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이리시맨’은 1950~1960년대 전설의 조폭 노조꾼 지미 호파 전 미국 트럭노조 위원장 스토리다. 로버트 케네디는 그를 “미국에 가장 위험한 개인”이라고 했다. 호파는 트럭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택시들을 폭파하고, 마피아와 결탁해 폭력을 행사하고 노조 자금을 부당 유용했다.

반세기도 더 지나서 이들보다 더한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한 게 문재인 정권 때 민주노총이다. 문 정권은 개국공신인 민노총으로부터 국무총리 인선 ‘승인’까지 받아야 했다. 민노총 위원장은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노동 현안은 물론 주한미군 철수를 포함해 경제·외교·통일 분야에 이르기까지 ‘국가 개조안’을 던졌다. 시위 진압을 충실히 한 경찰은 과잉 진압 이유로 직위해제되고 기소됐다. 무방비 공권력 앞에서 민노총은 마음껏 폭력을 휘둘렀다. 문 정권 5년간 대규모 점거 농성 25건에 연루된 노조원 2463명 중 경찰이 구속한 사람은 전무하며, 4조9760억원의 피해 추정액 중 법원에서 인용된 손해배상액은 5억2000만원이 전부다.

세상이 온통 내 것 같던 민노총의 단꿈은 작년 말 화물연대 파업 때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문 정권 시절 종이호랑이였던 공권력이 실제 살아 돌아온 데 대해 몹시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난 진짜 임자는 젊은 MZ세대 노조원들이다. 화물연대 파업에 동조하려고 지하철·철도 연대 파업을 시도했으나, “정치파업 하면서 회사 때문에 파업한다고 하지 마라”는 젊은 세대들의 거센 저항에 밀려 단 하루 만에 철회하는 참패를 당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수부 검사 출신답게 ‘노조 회계 투명성’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민노총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권력은 한정된 자원을 독점 배분하는 한,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마련이다. 민노총의 채용 비리, 고용 세습, 공사판 월례비에 이르기까지 비리는 차고 넘친다. ‘역사상 가장 공정한 세대’라는 MZ세대는 투명 회계에 적극 호응한다. 내가 낸 조합비 사용 내역을 10원 단위까지 알고 싶어 한다. 노조가 북한에 왜 쌀 보내기 운동을 하는지, 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연합훈련 반대를 주장하는지, 구속된 민노총 조합원에게 왜 하루 15만원씩을 지원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의 노동운동은 샌프란시스코 항만 노조 비리, 지미 호파의 마피아 연루 스캔들 여파로 1959년 노조 회계 공개를 의무화한 ‘랜드럼-그리핀법’ 이후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민노총의 패악을 바로잡는 것이 노동개혁의 종착역은 아니다. 하지만 민노총이란 장애물을 정리하지 않고선 연공제·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파업 대체인력 투입 등 노동개혁을 향해 한발도 나아갈 수 없다.

마거릿 대처가 세계 최강 영국 탄광노조를 굴복시키는 데 꼬박 363일이 걸렸다. 대처는 탄광노조와 싸우기 전 발전소 가동이 멈추지 않도록 몇 년 치 석탄을 몰래 비축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민노총이라는 거대 권력과의 싸움에 칼을 빼 든 윤 정부도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싸움이 외롭지만은 않을 수 있다. ‘쇠구슬 새총’을 보며 치를 떠는 MZ세대를 든든한 원군으로 만드는 게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