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빌라·오피스텔 임대업자 정모 씨 사건과 관련해 실제 집주인, 다시말해 '빌라왕'의 배후로 추정되는 신모씨가 1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숨진 빌라·오피스텔 임대업자 정모 씨 사건과 관련해 실제 집주인, 다시말해 '빌라왕'의 배후로 추정되는 신모씨가 1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바지사장’을 내세워 전세 사기를 벌인 ‘빌라왕’의 배후 세력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건축주에게 세입자를 구해주고 동시에 빌라왕에게 소유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건당 수백만~수천만원의 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밝혀진 배후세력 실체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주택 628채를 매수하고 임차인 37명에게 보증금 80억원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사기 등)로 부동산 매매 컨설팅업체 대표 신모씨(37) 등 78명을 붙잡았다고 13일 발표했다. 이번 전세 사기는 2017년 7월부터 2020년 9월까지 서울 강서·양천구와 인천 등에서 벌어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날 신씨에 대해 “증거인멸과 도주 위험이 있다”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신씨는 628채의 빌라를 소유해 빌라왕으로 알려진 김모씨를 통해 전세 사기를 공모했다. 전세 사기 수법은 다른 사건과 비슷했다. 일반적인 전세 사기는 건축주와 배후 세력인 부동산컨설팅 회사, 빌라왕으로 불리는 명의 대여자, 공인중개사 등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 건축주로부터 빌라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자기 돈은 하나도 들이지 않았다. 세입자에게 집값보다 높은 전세보증금을 받아 브로커와 컨설팅업체가 나눠 가지는 형태로 수익을 올렸다.

몸통 신씨 건당 수천만원 챙겨

이번 전세 사기 역시 몸통인 신씨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신씨는 전세 사기를 진행할 빌라를 확보하고 명목상 집주인인 빌라왕을 구하는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의 브로커가 함께 활동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신씨와 그 일당은 물건을 확보하면 이를 공인중개사 등에 연락을 돌려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구체적으로 중개업자들은 높은 보증금에 전세로 입주할 세입자들을, 신씨는 김씨같이 이름뿐인 소유주를 섭외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이 과정에서 신씨와 전세 컨설팅업자, 동시 진행 브로커 수십 명은 건당 수백만~수천만원씩 총 8억원 상당의 수수료를 건축주들로부터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경찰에 피해 사실을 밝힌 임차인은 628채 중 37명에 불과하다. 경찰은 신씨 등이 아직 피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임차인으로부터 벌어들인 돈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전세금만으로 빌라를 매입하고 이 중 일부가 신씨 등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떼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전세 만기가 돼서야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것으로 조사됐다. 집 명의를 넘겨받아 경매를 진행할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는 데다 집값이 내려가 전세금을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게 부동산업계의 분석이다.

경찰은 이와 함께 서울의 빌라 240여 채를 사들여 세를 놓다가 2021년 제주에서 숨진 정모씨 역시 바지사장에 불과하고 신씨가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신씨의 계좌 내역과 휴대폰 조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빌라 1139채를 소유했다가 지난해 10월 숨진 김모씨 등 다른 빌라왕에게도 배후 세력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