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다는 지표가 나오자 경기침체 회복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요 금속의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금 가격이 지난 4월 이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구리 가격도 지난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선물(2월물)의 트로이온스 당 가격은 전거래일보다 1.1% 오른 1898.80달러를 기록했다. 시장조사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지난 4월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이날 장중 금 선물 가격은 1904달러를 기록하며 1900달러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귀금속과 산업재 성격을 동시에 띄는 은의 선물 가격도 온스당 2.2% 오른 24.004달러를 기록했다.
13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의 금 선물 가격 추이. 자료=블룸버그
13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의 금 선물 가격 추이. 자료=블룸버그
소비자물가지수(CPI) 데이터가 시장 기대치에 부합하면서 이들 금속의 가격이 올랐다. 이날 미 노동통계국은 “지난달 전년 동기 대비 CPI 상승률이 6.5%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월 상승률(6.6%)보다 0.1%포인트 낮았다. CNBC에 따르면 다우존스가 집계했던 이노코미스트 추정치(6.5%)와 일치했다. 계절에 따른 변동성이 큰 에너지, 식품 등의 물가를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은 연율 기준 5.7%로 전월(6.0%)보다 0.3%포인트 낮았다.

CPI 상승률이 내려가면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 속도를 둔화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도 커졌다. 투자정보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제프 라이트 울프팩캐피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국채 수익률이 하락하고 달러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면서 금값이 올랐다”고 말했다. Fed가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것이란 시장의 기대가 달러와 미 국채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면서 투자 대안인 금의 가격이 올랐다는 설명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전일 대비 0.9% 하락한 102.25를 기록했다. 지난 6월 이후 최저치다.

중국의 금 매수세도 금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은 지난달 금 보유량을 전월보다 30톤 늘렸다. 폴 옹 스프롯자산운용 시장 전략가는 “중국에서만 지난해 마지막 몇 달간 금 보유량이 300톤 이상 늘었다”며 “어느 기업이 이렇게 공격적으로 매수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13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의 구리 선물 가격 추이. 자료=블룸버그
13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의 구리 선물 가격 추이. 자료=블룸버그
산업용 금속인 구리 가격도 CPI 상승률 완화 소식에 힘입어 상승했다. 이날 COMEX에서 구리 선물(3월물) 가격은 파운드당 0.7% 오른 4.1965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 이후 최고치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선물 가격은 톤당 전일 대비 0.66% 오른 9184.50달러를 기록했다. 2거래일 연속으로 톤당 가격이 9000달러를 웃돌았다. 이 가격은 2021년 5월 톤당 1만700달러를 웃돈 이후 하락세가 이어졌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반등했다.

12일 투자정보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중국의 수요 반등에 대한 기대와 미국 달러 약세로 인해 구리 가격이 작년 저점 대비 20% 이상 올랐다”며 “미국과 유럽 경제에 대해서도 연착륙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애널리스트들이 늘어나면서 (구리 가격에) 낙관적인 기대가 커졌다”고 짚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캐롤라인 베인 원자재 이코노미스트도 “중국 경제에 상승 모멘텀이 보이고 Fed의 금리 인상 완화 가능성이 현실화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꽤 긍정적인 기간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