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노동조합 11곳이 집단으로 “특별 격려금을 달라”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면담을 요청한 상황의 출발점은 1년여 전인 2021년 11월이다. 당시 현대차는 연구·사무 직군 중 상위 10%가량의 직원들에게 1인당 ‘탤런트 리워드’ 500만원을 지급했다. 임금협상에 따른 일괄 지급과 별개인 특별 성과급으로, 회사 측은 성과주의 문화의 시발점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제도를 도입했다. 그룹 고위층의 성과 중심 보상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업계와 재계에서도 “평등주의가 강한 현대차그룹에 변화가 일고 있다”며 반색했다.

○한 번 요구 들어주니 ‘통제 불가’

노조 떼쓰면 '평등보상'…현대차그룹, 이번엔 '성과주의' 지켜낼까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히 흘러가지 않았다. 1차로 특별 성과급을 받지 못한 현대차 직원들이 들고일어났다. 이어 “왜 현대차만 주느냐”며 기아 직원들도 불만을 제기했다. 결국 3개월여 만인 이듬해 3월, 현대차와 기아는 전 직원에게 1인당 400만원의 ‘특별 격려금’을 지급했다.

회사 측은 “이번 격려금은 탤런트 리워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극구 선을 그었지만, 한 번 후퇴한 ‘성과주의’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핵심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노조가 “우리도 달라”며 머리띠를 둘렀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4월 현대모비스 직원 전원에게도 1인당 400만원을 지급했다.

그다음 달 현대제철 노조가 특별 격려금을 요구하며 사장실과 공장장실을 100일 넘게 점거했고, 지난해 12월 성과급 1300만원 지급에 노사가 합의했다. 작년 특별 격려금을 받지 못한 계열사 노조들이 이번에 정 회장 앞으로 면담 요청서를 보낸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탤런트 리워드’의 당초 취지가 무색하게 현대차·기아 전 직원에게 똑같은 금액을 보상해준 것이 현재 상황을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현대차·기아, 현대모비스에 이어 현대제철에도 격려금을 지급하자 시트 변속기 제어기 등을 만드는 부품 계열사 노조까지 ‘회장 면담’을 요구하고 나섰다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탤런트 리워드 제도를 결국 폐지했다.

업계 관계자는 “주력 계열사의 성과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본 노조 지도부로서는 조합원들을 달래기 위해 가만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 대응, 尹 노동개혁과 직결

이번에 정 회장 앞으로 요청서를 보낸 계열사 11곳 노조는 모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소속이다. 이들이 요구한 특별 성과급 지급 여부는 윤석열 정부가 중점 과제로 추진 중인 성과 중심 보상체계 도입과도 연결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에도 노조 요구를 들어줄 경우 회사별·개인별 업적은 제각각인데도 ‘완성차부터 계열 부품사까지 똑같은 보상을 받는다’는 인식이 더욱 강화될 거란 전망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노조가 성과주의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는 강력한 기득권, 즉 가만히 있어도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에 요구를 들어주면 대기업 정규직 노조 기득권이 더욱 공고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격려금을 요구한 현대차그룹 계열사 11곳의 1인당 평균 임금(2021년 기준)은 연간 8200만~1억100만원 수준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노조의 ‘생떼’는 미래 모빌리티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기아 노조는 경기 화성에 짓기로 한 전기차 신공장에 대해 △회사 계획보다 두 배 늘려 20만 대 규모로 하고 △신공장 일자리를 기존 단순 공정과 비교해 오히려 더 늘리라며 착공을 막고 있다. 회사 측은 신공장 착공을 위해 지난해 초부터 노사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노조가 착공에 합의하지 않으면서 기아의 전기차 전략이 표류하고 있다.

박한신/김형규 기자 phs@hankyung.com